12월 중순까지만 해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하지만 웬걸! 동지와 성탄절 즈음이 되면서 한파가 몰아닥쳤다.
아롱이는 8월 말에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아로 새끼와 아미까지 입양되고 우리가 돌보는 냥이들이 셋으로 줄어든 다음이었다. 물론 귀요미 주변에 눈을 다친 고등어 한 마리와 치즈 냥이 셋이 늘 자기들도 밥을 줘야 한다고 대놓고 얼쩡거리며 따라다녀 그 아이들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돌보는 고양이들은 기본 셋이었다.
그런데 한여름이 되면서 아롱이 먹성이 좀 이상했다. 은토끼님은 아롱이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하실 정도였다. 박물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밥을 보챘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으면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도 이상해서 다른 냥이가 먹는 건 아닌가 싶어 감시를 해야 할 정도였다.
어쩐지???
그래도 늦가을까지 밥을 주러 다니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겨울!
이게 문제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냥이들도 인간도 견디기 힘들다. 공원을 드나드는 게 심각한 미션이 된다. 사실 이때만큼은 보조 집사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한 번만이라도 교대해 주실 수 있는.
얼마 전 일이다. 한낮의 기온도 영하 10도 안팎에서 헤매는 모양이었다. 영동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겨울나라라는데 다행히 이곳은 맑고 청명했다. 햇살이 제법 올라온 11시 무렵 집을 나섰다. 그제부터 긴 외투를 입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추워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나갔다.
애들이 어인 일로 고양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추웠던 모양이다. 체감 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니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하수구 은신처도 강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그렇게 들어가 자지 않던 집에서 네 마리가 우르르 나온 것이다.
도시락을 꺼내 줘야 하는데 손이 곱아 캔이 잘 따지지 않았다.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 캔을 조금 데웠는데도 찬바람이 부니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손을 비벼가며 캔과 파우치를 꺼내 주려는데 새끼들은 배식이 늦다고 앞발로 그릇을 자꾸 쳐댄다. 잘못하면 손등에 피를 보게 생겨 아롱이에게 애들 교육 좀 잘 시키라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걸 제 엄마에게 배운 것 같으니 뭐라 할 말은 아니다. 아롱이도 급식이 늦는 걸 까다로울 정도로 싫어한다.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할퀴며 성질까지 부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낚여서 도시락 배달을 안 가면 마음이 불편하니 갈 수밖에….
간신히 밥을 먹이고 귀요미와 다롱이에게 가서 밥을 줬다. 다행히 세 군데 도시락 배달 장소가 아주 멀지는 않다. 다롱이는 가까이 가도 할퀴는 일은 없다. 밥을 조금 늦게 주면 아주 드물게 다리를 물어버리는 봉변을 당할 수 있긴 하지만. 귀요미도 자기가 몸은 피할지언정 할퀴지는 않는다. 귀요미는 적어도 밥 주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킨다고나 할까? 사실 귀요미만큼만 신사적이면 밥 주는 것도 미션은 아닐 텐데. 하지만 귀요미 문제는 가끔 밥 먹으러 나오지 못한다거나 다롱이에게 밥을 가로채인다는데 있다. 그렇게 따지니 다들 힘을 들이는 건가?
심각한 문제는 추운 날씨 때문에 내 몸에 일어났다. 강추위에는 나가 돌아다니는 걸 조심해야 하는 고혈압 환자였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혈관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오후가 되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목 인대 부분에 통증이 생겼다. 아무리 풀어보려고 해도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결국 상비해 둔 소염진통제를 먹었다.
그 주에는 은토끼님이 백신 접종과 건강검진으로 휴가를 내셨다. 나나 은토끼님은 절대 어디가 아프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아롱이 가족에게는 세상없어도 하루 두 번 도시락 배달을 해야 한다. 박물관 어디어디를 헤매고 다니며 우리를 찾을 녀석들을 모른다면야 안 할 수도 있지만.
내 발목 상황을 알아차린 남편이 공원에 태워다 주기로 했다. '남편 뒀다 이런 때 쓰지 어디다 쓰냐?'는 헛소리를 다 들었다. 이럴 때 보면 남편이 꼭 남의 편만은 아닌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차를 대고 10분. 그 사이 아롱이 가족에게 다녀왔다. 다시 박물관 노상 주차장에 10분. 그 사이 귀요미 다롱이에게 다녀왔다. 박물관 노상 주차는 대형차만 허용된다. 회차할 경우에만 잠시 정차할 수 있다. 발목에 통증이 있는데 고양이 밥은 줘야 하니 어쩌겠는가? 그냥 진상이 되기로 했다. 냥이들 밥자리 주변 노상에 주차를 하고 절뚝거리며 밥을 주러 다녀온 것이다.
사실 좀 암담했다. 이런 긴급 상황 때는 도움이 절실하다. 누군가 도시락 마련은 해 줄 테니 냥이들 밥만 나 대신 주러 가주면 좋겠다 싶다.
정 힘들면 남편은 자신이 대신 가겠단다. 아롱이 가족은 가능하다. 아롱이가 워낙 영리한 데다 남편에게 밥을 얻어먹어 본 경험이 있어서다. 다롱이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귀요미. 아직도 나나 은토끼님이 조금만 가까이 가려해도 멀찍이 피하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은데. 긴급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아쉽다.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이 며칠. 겨울 한복판이라 냥이들의 겨울나기도 보통 걱정이 아니다. 은토끼님은 아롱이 새 가족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주셨다. 하지만 아롱이는 집에 들어가 자라고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다. 제 엄마가 들어가지 않으니 새끼들까지 집에 들어가 자지 않는다. 땅 속 깊숙하게 파인 배수구 속에 은신처를 마련해 거기서 나온다.
며칠 전 초화지를 지나가다 보니 아롱이 가족들이 사는 곳과 비슷한 배수구 속에 냥이들이 들어가 있는 게 밖에서 보였다. 물은 핑크 뮬리가 겨울에 얼어버릴까 덮어놓은 비닐에 고인 눈이 녹은 걸 가서 먹는다.
이 겨울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봄이 너무 천천히 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공원 냥이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 공원 냥이들에게도 골고루 미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