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 아빠는 어디 있어? “
"어떤 놈인지 몰라."
"도망갔어~~~?"
놀라듯이 묻는 조카 손주의 질문에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을 했다.
까미 엄마 아롱이가 새끼 네 마리를 혼자 키우던 5년 전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이런 때 챗 GPT를 활용하면 더 그럴듯한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 까미 아빠를 개~~으로 만들지 않고.
공원이라도 야생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생태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일부분이다. 사실 거의 아는 게 없다는 게 진실이다.
내가 아는 건 어느 날 아롱이가 새끼를 가져 먹이를 정신없이 먹었다는 것과 나중에 까미 네 남매를 데리고 밥자리로 나왔다는 거다. 까미는 올 블랙, 까로는 턱시도, 아로와 아미는 색상에 차이는 있지만 제 엄마 아롱이를 닮아 회오리 무늬다.
아롱이와 네 남매에게 밥을 먹이는 장소에 아주 가끔 덩치가 큰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멀찍이 지켜보고 있어 여분의 밥을 건넨 적은 있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네가 아빠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제주에 사는 할아버지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우리 집 인근 아산병원 진료를 위해 조카 가족이 왔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우리 집이 숙소나 마찬가지였기에 사정상 큰 조카 손주와 내가 보내는 시간도 제법 있었다. 이번에도 조카 손녀인 한나는 병원에 가고 조카손주와 둘이 공원 해바라기 원에 갔다. 삼색이 녀석이라도 찾으려 매일 들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성까지 나를 따라나선 조카 손주 준성이에게 까미 엄마가 요즘 어디서 나오는지 알려주다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흘러간 것이다.
아롱이 혼자 까미 남매를 키우며 고군분투 온갖 고생을 하는 동안 까미 아빠란 녀석이 뭘 했는지 나도 모른다. 어떤 놈인지 모른다고 말하자 제법 책임감 있는 남자로 크고 있는 조카 손주의 해맑은 질문에 그야말로 빵 터져 웃고 말았다. 설명은 영어에 능통한 제 아빠가 해야겠지 싶었다.
조카 손녀 한나의 검사 결과는 아주 좋았다.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오가던 게 일 년으로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무더위에도 조약돌처럼 반짝거리는 얼굴로 뛰어다니는 한나를 보면 온갖 장치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고통을 견디던 모습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 더 한나의 활달한 모습을 보면 내 마음에 훈기가 넉넉히 채워지는 모양이다.
조카 내외와 손주들이 베트남으로 돌아간 3일 뒤.
검사결과를 보러 남편과 병원에 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진료를 하시는 교수님의 그림까지 곁들인 설명에 의하면 대동맥 스턴트가 들어간 주변의 실핏줄이 혈액을 보내려고 애쓰면서 핏줄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걸 제거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입원해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당황했다. 심지어 물어보려고 생각해 둔 질문을 잊어버릴 정도로 멘붕이 왔다.
남편은 지금도 다리 주변에 멍이 몇 개나 생겨 있다. 그 물음만 잊은 게 아니었다. 시술에 대해 당연히 물어야 할 것들도 못하고 돌아섰다.
대동맥 주변 0.3미리의 작은 실핏줄만 제거하면 다른 핏줄이 커지는 일은 더 안 생기는지 그런 것도 물었어야 했다.
당사자인 남편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달 말에 CT와 MRI 검사 등을 몇 번이나 하고 돌아오며 '이렇게 라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푸념이 생각났다.
각종 질병 때문에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매일 한 줌씩 먹어야 하는 각종 약과 병원 출입은 그 자체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옆에 있는 사람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는 의례적인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입원날짜를 예약하고 먹어야 할 약 처방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공원으로 향했다. 맥이 풀려서인지 걸음이 느릿했다. 삼색이가 나오던 토성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하더니 백로가 지나서인지 바람에 선선함이 실려 있었다.
삼색이는 한 달이 넘도록 보지 못했던 터라 기대가 없었는데~.
잡목림 속에서 삼색이가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나를 반겼다. 반색을 하며 가까이 가 먹이를 주려는 나에게 하악질을 해도 반가웠다. 녀석을 만나면 주려고 닭가슴살과 캔을 가방에 챙겨 다녀 다행이었다.
요즘 공원 고양이들과 관련된 흉흉한 소문이 많아 녀석의 생사가 궁금했었다. 전염병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에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할아버지가 큰 개를 끌고 다니며 고양이를 공격하게 한다는 이야기까지.
걸으면서 심호흡도 하고 삼색이를 만나서인지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나를 읽었는지 막내 동생의 조언은 이랬다.
- 얼마나 다행이야. 병원에서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 병에 안 걸리면 좋겠지만 병에 걸렸어도 그걸 발견해서 치료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
맞는 말이다. 남편에게 이런저런 병이 생겨 있어도 치료가 가능하고 입원도 짧았다. 지난번 입원했을 때 옆 병상 환자는 작년 8월부터 10개월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었다. 요양병원과 대형병원을 오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안 봐도 어려움이 이해가 되었다.
피가 새는 핏줄이 너무 작아 시술로 불가능해 개복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치료 방법이 있다면 그건 괜찮은 거다. 의료 기술이 뛰어난 병원을 집 가까이 두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원거리라 오가는 데만도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사람들이나 치료마저 포기해야 하는 중증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동생과 대화하며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공원을 나서는데 작은 아들에게 카톡 문자가 와 있었다.
- 수술해서 괜찮은 거라면 그게 어디야.-
조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태어나자마자 독이나 마찬가지인 주사를 대여섯 개나 맞고도 살아난 한나가 수술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어 고맙다고.
- 하느님은 감당할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
시련을 견뎌내고 매일 성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른 사람의 시련에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은가 좁은 가는 감당해 본 경험치이리라.
시련도 받는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련을 크게 확대하지 말고 툭툭 털고 남편도 잘 극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