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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말해주는 것

by 권영순

한 나라의 국민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은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라는 말이 있다. 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캣맘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도 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롱이에게 밥을 주러 다니는 건 아니다. 그냥 아롱이가 오늘도 나오니 굶기지 않기 위해 도시락 배달을 멈추지 못할 뿐이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나나 은토끼님은 냥이들 집이 자꾸 없어져 심각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특히 한파가 심하거나 눈이나 비가 내리면 더 걱정이 되었다. 참다못해 동물학대와 사유재산 침해로 신고하겠다고 경고문을 써 붙였더니 더 악랄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미친놈이 맞는 모양이었다.

2월이 되면서 아침에 가 보면 매일 이런 상태였다. 오늘도 역시나 애들 집 지붕위에까지 마구잡이로 음식물을 뿌려놓았다. 집 여기저기 지팡이로 후려친 자국도 있었다. 인간이 그렇게 못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보면 사는 수준이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 테러.jpg 쓰레기 앞에서 아미가 앉아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혹시나 먹을까 걱정스러웠다.

- 새벽 4시 30분. 저절로 눈이 떠졌다. 5시에 알람을 맞춰 두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잠을 설친 모양이다. 다시 누우려는 데 알람이 울렸다. 일단 기상!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는 영상 16도까지 올라갔다. 오늘 새벽 온도는 영상 6도. 세수도 안 하고 대충 옷을 껴입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둑한 새벽. 비가 부슬거린다. 안개비다. 냥이들 먹거리도 가방에 챙겼다. 텀블러에 캐모마일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서두르던 남편은 나보다 먼저 건널목을 뛰어가 건넌다. 다음 신호에 40대 정도 된 부부가 나와 함께 건널목을 건넌다. 나도 모르게 혹시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게 아닌지 흘긋거렸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5시 16분. 어제보다 정확히 2시간 전이다.

어제의 상황. 어제도 남편이 먼저 건널목을 뛰어서 건넜다. 가 보니!!! 가관이었다. 집 세 개가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뿌려놓은 건 마찬가지. 그렇게 냥이를 돌보는 우리들이 미울까? 아미와 다롱이가 그 첫새벽 비를 맞으며 밖에 나와 서성대는 데 어찌나 속이 들끓는지. 아로와 고등어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망연자실 서 있는 나 대신 남편이 집을 바로 세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줍는다. 집을 부수다시피 한 이유는? 알 것 같다. 아마 어제 써 붙인 협조문 탓이겠지? 참다못해 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써 붙였다. 아마 소형 카메라를 찾으려고 집을 다 끄집어 내팽개친 모양이다. 겁은 나나? 자기 하는 짓에 대해 반성은 없고? 애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으니 마음이 짠하다. 그냥 놔두고 보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참고 견디기엔. 이제 나도 이판사판이다.

집 정리를 마치니 어디선가 숨어 있던 고등어와 아로가 슬그머니 나온다. 유별나게 추위를 타는 고등어. 지난 9월 어디선가 독립해 아로 아미가 있던 밥자리로 들어온 업둥이다. 들어올 때부터 왼쪽 눈에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업둥이 초기에는 멀찍이서 밥을 따로 줘야만 먹었다. 낮 가림이 심했다. 밥만 먹고 사라져 눈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왼쪽 눈은 실명. 백태가 되었다.

내가 입양한 까미도 태어나 2개월 무렵 심하게 눈을 다쳤었다. 다행히 엄마 아롱이의 극진한 간호 덕에 상처는 치유됐다. 새끼 길냥이가 눈을 다쳤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집 근처 동물병원에 가서 징징거렸다. 수의사 선생님은 어미가 가까이 있느냐? 핦아 주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밥을 먹이러 가면 까미의 눈을 그루밍해 주는 아롱이를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까미를 입양하며 중성화 수술을 할 때 건강 검진도 부탁했다. 특히 시력 검사. 선생님은 까미의 눈도 아주 건강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고등어의 눈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경계가 심한 아이였다. 지금은 밥을 먹을 때 내가 번쩍 들어 옮겨도 발톱조차 내지 않는다. 아로 아미에게 배운 모양이다.

나는 밥을 주러 갈 때마다 밥자리에 들어서며 항상 애들 이름을 불러준다. 모두 뛰어나오는 데. 어제는 기척이 없었다. 한참을 불러대니 그제야 억새숲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안 하던 행동이다. 더 큰 문제는 밥도 안 먹는다는 데 있었다. 좋아하는 캔을 내밀어도 소용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어, 이 녀석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장난 아니네!’ 했는데.

이 신 새벽. 사람 얼굴조차 분별이 안 되는 시간에 나는 왜 여기 있어야 했을까? - 2021년 2월 15일

그날 내 일기다. 은토끼님은 애들한테 잔인하게 구는 이유가 대충 짐작된다고 하셨다. 아마 자신과 말다툼한 사람 짓일 거라고. 애들 집 청소를 하는 자기한테 와서 누구 맘대로 여기다 고양이집을 설치했냐고 소리를 지르기에 다 허락받고 하는 거라고 하셨단다. 말다툼 내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생각의 차이에 대해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이 많은 남자였다고 하셨다. 아마 눈밭에 난 발자국이 그 인간 것이 맞는 모양이다. 쉽게 멈추지 않을 테니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했다. 여자인 우리들이 할 수 없으니 결국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경고문.jpg 누군가를 미워하며 먹은 음식이 사람에게 좋은 작용을 할까? 그게 내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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