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첫새벽 냥이들 집을 지키러 갔을까? 은토끼님은 새벽에 택시를 타고 와 애들 집을 지켜야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밤늦게는 없어지지 않으니 분명 새벽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셨다. 애들이 새벽마다 얼마나 겁에 질릴지 생각만 해도 화가 나신다면서. 당연히 말렸다. 나도 두렵다. 그 사람이 보통의 사람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렇다면 일종의 사이코인데. 여자라고 쉽게 여겨 어떤 해꼬지를 할지 누가 알겠는가?
2월 15일 그 새벽. 남편과 나는 비까지 내리는데 설마 오늘도 오리? 했었다. 하지만 그놈은 설날 아침에도 와서 냥이들 집 앞에 음식물 쓰레기 테러를 했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희부연 새벽에 나는 애들 밥자리 맞은편 벤치에 가 앉았다. 영상이라도 비가 뿌려서인지 다소 쌀쌀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냥이들 집 맞은편 둔덕에 쪼그리고 앉았다.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니 희부옇게 남편의 형체만 보였다.
지킨 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 봉지를 든 그놈이 불쑥 냥이들 집이 있는 억새풀을 헤집고 들어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애들 집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남편은 이미 건널목을 건너는 그놈을 유심히 살폈던 모양이다.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있어 짐작이 되었단다. 벌떡 일어서서 둔덕을 뛰어내려오며 "도독 놈 잡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설마 비 오는 날 자기를 잡으러 올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놈이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은 미술관 옆을 지나 호숫가를 따라 도망쳤다. 비까지 오는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도 같이 뛰었다. 남편은 더 빨리 뛰며 계속 "도독 놈, 잡아라."며 소리를 질렀다. 놈은 도망을 가면서도 " 나 도둑 아니다."라고 소리를 쳤다. 무슨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아 속으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손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채 그놈은 정말 빨리 달렸다. 나는 호숫가 길 입구에서 남편과 놈을 놓치고 헉헉거렸다. 남편은 제법 멀리까지 쫓아간 모양이었다. 나중에 놈은 "다시는 안 올게. 쫓아오지 마!"라면서 곰말다리 아래쪽으로 도망쳤단다.
설마 남자까지 와서 지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만 당하는 우리도 정말 심각했다. 새벽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는 나를 남편도 지켜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놈이 와서 애들 괴롭히고 집 가져다 버리는 거 부족해 일부러 음식물 쓰레기까지 매일 투척하는 걸 알아서였다.
어디 신고하기도 애매한 일이라 더 문제였다. 경찰서에 신고할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각종 업무가 가중되어 힘들어하는 분들까지 이런 일에 끌어들이기 망설여졌다. 구청이나 공원 측에 음식물 쓰레기 무단 투기로 신고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너무 지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직접 놈을 잡아 혼쭐을 내는 게 나나 은토끼님 입장에서는 마지막 방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시간 경비를 도시는 공원 경비분을 만났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이 지역의 경비를 강화하시겠다며 혀를 차셨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러 와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폭력사태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동안 우리도 쌓인 게 많다. 놈이 가지고 온 음식물 쓰레기를 그 얼굴에 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추운 겨울. 냥이들만이 아니라 돌보는 우리까지 더 힘들고 춥게 보내는 데 그놈은 정말 큰 역할을 했다. 호되게 당해서인지 음식물 쓰레기를 더 이상 투척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