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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냥이 아롱이

연말연시를 공원 냥이들과

by 권영순

어제는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이 거칠었다. 베란다 밖 창문이 덜컹거린다. 집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공원 냥이들이 긴 밤을 잘 견뎌낼지 걱정이 된다. 아롱이네 가족이 있는 곳에 둔 집에는 핫팩을 두 개 넣어줬다. 며칠 전 강추위가 몰아닥친 날 오전에 가보니 아롱이와 새끼 세 마리가 집에서 뛰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날은 엄청 주웠다. 모자 없이 나갔다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올 정도였다. 냥이들 캔을 따야 하는데 손이 곱아 잘 따지지 않았다. 성질 급한 새끼 두 녀석은 밥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자꾸 앞발로 할퀴려 든다. 눈을 똑바로 보면서

'야! 나 그거 싫어한다고 했지?'

라며 팔로 크게 엑스자를 보여줬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 오른 손 등 여기저기 할퀸 자국이 남은 걸 보면.

나도 명색이 주부다. 평소 고무장갑을 쓰지 않다 보니 손등을 할퀴면 물에 닿을 때마다 상처 부위가 욱신거린다. 자꾸 할퀸다고 어느 날은 들고 있던 일회용 숫가락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줬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제 엄마를 닮은 조막만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급 미안해진다.

추위는 냥이들 먹성을 더 자극하는 모양이다. 하긴 칼로리가 더 많이 필요하겠지? 사람이나 고양이나.

지난 강추위에 돌아다녀서인지 왼쪽 발목에 통증이 생겼다. 추위는 혈관에도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염증약을 먹었지만 통증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제발 춥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눈도 오지 않으면 더 행복하고. 추위와 눈은 냥이들이나 내게 아주 쥐약이다. 이 험난한 시간을 빨리 벗어났으면 좋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연말연시를 공원 냥이들을 전담해 돌보게 된 사연은 이렇다. 은토끼님이 연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백신을 접종하시기 때문이다. 공휴일까지 쉬시게 되어 그 사이 내가 하루 두 번 냥이들 밥을 주러 가게 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오전에 가니 아롱이 가족들이 양지바른 곳에 오종종 모여 있다 날 보더니 다들 뛰어온다. 넷이 어찌나 명랑하게 달려오는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커진다.

"우리 애기들! 밥 먹어야지. 자, 가서 밥 먹자~"

우르르 날 따라오는 냥이들을 데리고 밥자리로 가 밥을 줬다. 각자 밥그릇에 따로 밥을 줘도 혹 다른 아이 밥이 더 맛난 건 아닐까 싶은지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새끼들이 이럴 때 엄마 아롱이는 한 구석에 요조숙녀처럼 앉아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엄마의 처지는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새끼들 먹는 게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게지. 그래서인지 아롱이에게 신경이 더 쓰인다. 아롱이가 좋아하는 걸 따로 준비했다 새끼들이 제 먹이에 정신없을 때 얼른 챙긴다. 그러나 눈치 천단 공원 고양이들 중에서도 한 수 위인 아롱이 새끼들이다.

세 마리 중 진한 고등어 녀석은 제 엄마 밥을 수시로 빼앗는다. 처음에는 머리를 들이밀며 제 엄마를 밀쳐냈다. 요즘은 어디서 배웠는지 아예 앞발로 밥그릇을 끌어가 버린다. 장난 아니다. 할 수없이 나도 눈치 싸움을 해야 한다. 아롱이에게만 건사료 통에 스낵과 북어 트릿 거기에 캣만두까지 넣어 슬쩍 건사료 통을 건넨다. 하지만 그것도 여러 번 하다보니 제 어미의 특식을 눈치 챈 모양이다. 이번에는 점박이 녀석이 흘깃 보고 제 엄마 밥그릇을 뺏는다.

대략 6개월이 지나가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힘도 눈치도 장난 아니다. 작년 겨울에는 까미와 까로를 입양보내고 아로 아미와 떨어져 홀로 지내는 아롱이 때문에 마음이 쓰였었다. 밥을 다 먹고도 나를 따라나서는 아롱이가 늘 안스러웠다. 그래도 이번 겨울은 새끼들과 함께 지내 외롭지는 않아 보인다. 다행이다.

아롱이 가족.jpg 6월에 태어난 아롱이와 새끼들. 이 하수구 구멍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까미 동생들이다. 6개월이 되어가니 체격이 작은 엄마와 비슷해졌다.

문제는 귀요미다. 중성화 되었는데도 수컷이라고 영역 싸움을 걸어오는 알파 수컷들에게 수시로 서식지를 빼앗긴다. 지난 2년 동안 밥자리를 몇 번이나 옮겼다. 아니 쫒겨다녔다. 지금은 아롱이가 첫 겨울을 보냈던 하수도 구멍에서 지낸다. 이번에는 집을 옮겨줬는데도 거기 들어가지 못한다. 불안한 모양이다.

요즘은 하루 한 번만 찾아도 안심이 된다. 얼마 전에는 며칠을 찾지 못해 밥만 두고 돌아오기도 했다. 얼마나 불안하면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귀요미.jpg 낮에는 이 억새숲에서 햇볕을 쪼인다.

2021년 마지막 날인 오늘 오후 일이다. 오전에 귀요미를 만나지 못해 조금 일찍 나갔다. 평소 4시에 가다 오늘은 3시에 갔다. 하수구 앞에서 귀요미를 불렀다. 그런데 구멍 안에서 낯선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귀요미 밥을 준 2년 동안 나는 한 번도 귀요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좀 이상했다. 구멍을 들여다보니 뒤태는 귀요미가 맞는 것 같았다.

일단 확인은 해야 했다. 잘못 밥을 주면 엉뚱한 녀석이 먹고 귀요미를 쫒아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작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그 안에 있는 밥그릇을 끄집어 내니 귀요미가 놀라 뛰쳐나온다. 하지만 내가 놀랄 틈도 없이 더 황당한 걸 보게 되었다. 다롱이도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놀란 건 둘째치고 어이가 가출하는 줄 알았다.

다롱이는 오전에 손이 곱아 밥을 조금 늦게 줬다고 야무지게 내 다리를 깨물어버렸다. 날이 추워 두터운 바지를 입었는데도 상처가 꽤 생겼을 것 같았다. 어찌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이렇게 깨물면 나 밥 주러 안 온다!'

평소 바지에 온통 자기 털을 묻혀가며 엉기는 녀석이긴 하지만 물지는 않던 녀석이다. 소리를 지르니 저도 움찔한 모양이다. 정말 밥을 주러 가지 않을까봐 그래선지 제 집이 아니라 귀요미 자리까지 출장을 온 모양이다. 감시 차원이었나?

귀요미 밥에도 마음대로 입을 대는 녀석이라 할 수 없이 다롱이를 데리고 밥 자리로 이동했다. 입에서는 계속 잔소리가 나왔다. 자기 집 두고 왜 남의 밥자리에 가 방해하느냐고.

다롱이가 먹이에 정신이 없는 걸 보고 멀리 돌아서 다시 귀요미에게 가야했다. 다롱이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자기 밥보다 좋은 걸 주나 싶어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 개를 데리고 지나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인사를 건넨다.

"날도 추운데 애기들 밥 주시느라 애쓰시네요."

오늘은 그 인사가 부담되지 않는다. 공원 냥이들을 '애기'라고 불러주는 그 다정함이 마음에 다가와서다. 미소와 목례만 건너고 걸음을 재촉한다.

생각해 보면 다롱이도 안 된 건 맞다. 지난 6월 함께 지내던 아로 새끼들과 아미가 은토끼님에게 입양되고 혼자 지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롱이는 억새숲에 있는 집에서 지낸다.

지난 늦은 봄 다롱이는 알파 수컷 '꼬짤'에게 밥자리에서 쫒겨났다. 여름 이후부터 '꼬짤' 녀석이 주변에서 통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모양이다. 다롱이는 날이 많이 추워지자 다시 집에 들어가 자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에 어마무시하게 큰 고등어와 검은 턱시도 냥이가 돌아다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도 암컷이라 그런지 그냥 놔두는 느낌이다. 귀요미도 다롱이처럼 그냥 놔두면 좋을 텐데...

귀요미가 밥 먹는 걸 확인하고 공원을 나선다. 벌써 해가 갸웃하며 넘어간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해라서인지 저물어가는 모습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모습이 한심한가? 물론 커다란 행복감이나 만족을 느끼는 건 아니다. 3년째 되어가니 의무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돌보는 냥이들 모두에게 밥을 먹여서인지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그거면 됐다.

내일이면 시작되는 새해도 냥이들이 매일 나와 눈을 맞추고 도시락을 맛나게 먹어주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녀석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만 안 하게 해 줘도 고맙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겪어서다. 아롱이와 새끼들, 다롱이 그리고 귀요미가 2022년에도 공원에서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 짧게 소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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