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가 이사를 갔다. 허락도 없이!
1월 1일 새해 첫날. 아롱이와 새끼들에게 신년 특선을 줬다. 좋아하는 간식을 더 가져다 먹인 것이다.
1월 2일. 그동안 미뤘던 오 남매 모임을 화성 청요리에서 가졌다. 연말에 못 만났으니 연초에 모여 떡국도 끓여 먹고 화목 난로에 고구마도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행산 주변을 따라 동네 산책도 했다. 마을 이름이 정겹다. 할머니의 친가가 있던 회려니(?). 상기리의 옛 이름이란다. 청요리에는 돌아가신 엄마와 몇 번 오간 교장선생님 댁도 있다. 그 근처를 스치듯 지나쳤다. 까만 개 두 마리가 나와 짖어대니 교장선생님이 나와보신다. 멀리서 목례만 했다. 아마 누군지 알아보지는 못 하셨을 테다.
그렇게 하루 공원에 나가지 못했다.
1월 3일 월요일. 월요일은 은토끼님이 휴무시다. 2일 오후에 아롱이를 보지 못했다고 하셔서 일찍 나갔다. 그런데, 아침에 가니 아롱이 가족이 통째로 없다. 분명 박물관 뒤 언덕에서 아롱이 새끼 중 연한 고등어를 봤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달려와 빼꼼 눈을 맞추었다.
"엄마, 어디 갔냐?"
왜인지 퇴근한 아빠가 아내를 찾는 필이다. 당연히 나를 따라올 거라고 믿고 밥자리로 가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밥자리로 내려오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밥자리로 가 보니 어제 은토끼님이 주신 밥들이 거의 그대로다. 먹이들이 모두 얼어붙은 채 있는 걸 보니 걱정이 된다. 심지어 건사료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는 빈 통이어야 정상이다. 하수도 아래 은신처에도 기척이 없다. 어제 분명 무슨 일이 생겼던 모양이다. 개에게 쫓겼거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했거나.
박물관 주변을 돌며 아롱이를 불러댔다. 내가 도시락을 배달하러 왔다는 걸 연한 고등어 새끼가 알려줬으니 오겠지 하며 일단 귀요미를 찾으러 갔다.
귀요미는 억새숲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다. 춥다고 깔아준 상자 위에 앉아 햇볕을 쪼이며 아침 도시락을 기다리는 모습이 엄청 반갑다. 얼른 좋아하는 닭가슴살 등을 꺼내 주려는데 옆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느 지점에서 날 봤는지 모르겠다. 다롱이가 거기까지 쫓아와 있었다. 귀요미 밥만 얼른 챙기고 다롱이를 데리고 가 밥을 먹였다. 얼음덩이가 된 물도 갈아주고 건사료도 더 부어놓으면서 다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애들 자리마다 전날 두고 간 물들은 모두 꽝꽝 얼어 얼음 덩어리다. 며칠 동안 버린 물그릇 모양의 얼음덩이가 주변에 여기저기다. 말만 영상인가 보다.
되돌아서 부지런히 아롱이를 찾아 나섰다. 어떻게든 아롱이 가족을 찾아야 한다. 1월 4일은 10시에 A병원 정형외과에 예약이 되어 있다. 왼쪽 발목 아킬레스 건 통증 때문에 지난 연말 예약을 해 둔 것이다. 은토끼님에게 2일과 4일에 공원을 나오기 어려운 사정을 미리 알려드렸다.
그리고, 아롱이를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빼꼼 고개를 내밀다 사라진 연한 고등어조차 털끝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귀요미가 지금 자리로 옮겨오기 전 근처에 살던 삼색이만 아롱이를 부르며 다니는 나를 바라본다. 피하지도 않는다. 박물관 돌담에 기대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는 모습이다.
"아롱이 어딨냐? 아롱이 보면 찾는다고 좀 전해줘."
삼색이는 약간 아니꼬운 표정이다. 지난번 귀요미 잠자리를 빼앗아 나한테 쫓겨난 일이 떠오른 모양이다. 녀석은 아주 넓고 큰 집이 있다. 박물관 직원 여러 명이 돌보는 냥이라 먹이나 잠자리나 공원 냥이들 수준으로 보면 거의 호텔급이다. 녀석의 집은 1미터 정도 크기에 폭신한 담요를 깔아 둔 데다 돌보는 사람이 매일 밥을 주니 밥을 주지 말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그런데 귀요미 집에는 왜 들어가 있는지???
나는 3년 동안 아롱이와 귀요미가 이사한 곳을 찾아다닌 경력이 있다. 그 경험으로 아는 게 있다. 절대 박물관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더구나 냥이들은 밥시간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다. 놀랄 정도다. 그 시간을 놓친다는 건 생존의 문제라는 의식이 분명한 모양이다. 박물관 주변 사방을 집중적으로 샅샅이 찾아다니며 부르면 나온다. 아롱이나 귀요미를 불러대는 데 사람들 눈치가 좀 보여서 그렇지. '저. 여자 뭐지?' 이런 눈치 말이다.
이전에 있던 장소에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하늘공원을 올라갔다. 여기저기 2일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여기도 아닌가?'
지난 가을까지 있었던 장소를 벗어나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아롱이와 새끼들 넷이 모여있다 우르르 나온다. 저쪽을 보니 아빠인 듯한 턱시도 냥이가 멀거니 바라본다. 아는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아롱이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 진상아! 이사를 가면 간다고 말을 하던지? 부르면 빨랑 달려오던지? 엉!!!"
새끼 세 마리는 밥이나 빨리 내놓으라는 표정으로 내 주변을 맴돈다.
안도감에 반가움이 섞여 나도 모르게 손이 빨라진다. 분명 배가 많이 고팠을 터다. 하지만 속으로 걱정은 된다. 아롱이가 옮겨온 장소 때문이다. 이곳은 사람과 개의 출입이 먼저 있던 곳보다 확연히 적다. 문제는 박물관 조경관리팀에서 냥이들 밥 주는 건 안된다는 주의를 은토끼님이 받으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라며 애들이 있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 은토끼님에게 알려드렸다.
하지만 4일. 병원을 다녀와 점심을 먹으려 준비하다 카톡을 열어보니 오늘 내 일정을 내일로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근무지를 함부로 이탈하실 수 없는 은토끼님을 대신해 아롱이 가족을 찾으러 나갔다. 없었다. 이사 간 곳 근처에서 어제 본 까만 턱시도 냥이만 나를 보고 도망간다. 할 수 없이 원래 자리로 다시 가 봤다. 평소보다 3시간이나 늦었으니 혹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모두 그곳 바위에 앉아 배가 고픈지 졸고 있다. 다행히 해가 들어 많이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처량해 보인다. 배는 고프고 도시락은 안 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아롱이 밥 주러 오는 걸 그만둘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냥이에게 낚인 사람의 숙명이니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