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가네 이야기>를 쓰는 데 2년 이상이 걸렸다. 수정하는 데 다시 1년. 문제는 막판 수정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데 있었다. 도통 진척이 없어 결국 싸들고 제주로 갔다. 코로나 와중이라 어디 다닐 것도 아니니 조카네 집에서 수정 작업이나 하자는 결심이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수개월 지지부진하던 글을 마무리해 브런치 작가까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짐을 푸는데 까미가 나오더니 캐리어에 들어가 아주 누워버린다. 짐정리를 위해 나오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그냥 못들은 척이다. 어디 가서 2주나 있다 돌아왔느냐는 눈흘김도 잊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네 엄마 아롱이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서둘러 먹이를 챙겨 나갔다.
아롱이의 반응은? 아롱이는 내게 과잉 표현을 하는 법이 없다. 어쩌다 잘못 건드리면 날카로운 앞발로 여지없이 할퀴기는 한다.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건 다 내몫이다. 평소에는 밥을 줘도 흘깃 보고 밥만 먹는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밥을 줘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다리 사이를 오가며 냥냥거린다. 마치 '왜 그동안 오지 않았냐? 네가 이제 안 오는 줄 알았다.' 이런 질책이 담긴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녀석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하지만 그건 피를 볼 각오를 해도 안 될 일이다. 지금까지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
할 수 없이 무릎을 굽히고 아롱이 눈을 보며
"아롱아. 나 당분간 제주 안 갈 거야. 얼른 밥 먹어. 앞으로 가면 간다고 몇 밤 자고 온다고 꼭 말하고 갈게."
알아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그날 속으로 진심 그런 생각을 했다.
' 아. 내가 이녀석 밥주러 안 오는 일은 없겠다. 그냥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밥주러 와야겠다.'
이렇게 포기했다. 이런 녀석을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우리가 좀 늦거나 일이 있어 하루 한 번만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롱이는 박물관 정산소 앞 나무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린다. 주차장 앞 건널목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을 목을 빼고 살피는 모습 또한 수없이 목격했다. 나도 모르게 뛰어가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작은 아들이 어렸을 때 '섬집아기' 노래를 들려주자 흘리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귀요미도 마찬가지다. 나나 은토끼님이 공원을 하루 비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긴 적이 있다. 전날 밤 건사료를 잔뜩 주고 아이들에게 내일은 못오고 모레 오후에 오겠다고 말로 설명을 했다. 은토끼님이 그렇게라도 한 번 해 보자고 하신 것이다. 제주에서 이른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내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공원에 도시락을 들고 나갔다. 공원을 하루 비운 것이다.
나는 평소 귀요미를 무던하지만 무심하기도 한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다. 오랜 시간 밥을 먹여 안면을 충분히 익혔을 텐데도 쉽게 곁을 주지 않아서다. 쿨한 표정에 멀리서 나를 봐도 절대 뛰어오지 않는다.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되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앉는다. 거리두기의 표본처럼. 이게 평소 귀요미의 패턴이다. 조금 가까이 밥그릇을 옮겨주려하면 어찌나 빨리 피하는지. 더 긴 시간 귀요미 먹이를 챙겨오신 은토끼님조차
' 아유. 알았어~'
하시면서 얼른 밥그릇만 밀고 더 멀리 물러서시곤 한다.
그런데 딱 하루 둘이 공원을 비운 다음 날이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후다닥 뛰어왔다. 정말 번개처럼 나타났다. 그 휘둥그런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녀석이 우리가 오지 않는 하루와 반나절 동안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기가 어디로 서식지를 옮겨도 꼬박꼬박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오지 않는 걸 귀요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게 된 날이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귀요미 밥도 끊을 수 없다는 걸.
자가격리! 지난 2년 동안 나는 그 말을 수도없이 들었다. 어쩌다 두통이 생기거나 갑자기 코가 나오고 목이 좀 아픈 증상이 생기면 걱정이 한없이 뻗어간다. 혹시라도 애들 밥을 주러 아예 나가지 못할 일이 생길까봐서다. 보조 집사를 구하지 못한 탓에 결국 아주 급한 경우는 남편이 동원되었다. 아롱이는 여러 번 안면이 있어 냥냥거리긴 해도 밥을 주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롱이도 눈치가 빨라 아무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귀요미는 누구에게 쉽게 곁을 내주는 녀석이 아니다. 그냥 우리가 가야 한다.
아들 둘이 어릴 때는 내 건강이 염려되는 이유가 아들들 때문이었다. 혹 내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아들 둘의 미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 나나 은토끼님의 건강과 안녕은 우리가 돌보는 공원 냥이들의 삶과 직결된다. 이미 수년을 우리가 주는 먹이에 익숙해지게 만들었으니 남은 삶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게 내 생각이다. 다만 가족들과 한 약속대로 아롱이와 귀요미가 나올 때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