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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냥이 아롱이-18. 중성화 시즌

by 권영순

구청 중성화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2월 19일. 고등어를 중성화시키러 보냈다. 은토끼님은 나에게 고등어 포획 사진을 보내주셨다. 고등어가 울며 불며 가서 마음이 아주 짠하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가 중성화시키고 싶은 녀석은 따로 있었다. 꼬리가 유달리 짧은 턱시도 냥이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꼬짤'이라고 불렀다. 녀석은 미술관 주변에서 나타나 종종 아이들을 괴롭혔다. 제일 문제는 아롱이 남매들이 살던 조릿대 주변에 서식하는 귀요미였다.

귀요미는 꼬짤과 덩치는 비슷하지만 경계심만 심할 뿐 순둥이다. 점잖은 은회색 눈을 가진 데다 아주 잘생긴 턱시도 냥이다. 꼬짤은 수시로 귀요미를 괴롭혀 결국은 자리에서 쫓아냈다. 엉덩이에 심하게 물린 상처 자국을 보인 다음이었다. 귀요미는 꼬짤의 공격을 피해 연구소 뒤로 다시 소형 분수대 주변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포획되었다. 우리가 찾으러 다니는 사이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포획된 모양이었다. 마침 귀요미를 찾으러 다니시던 은토끼님이 그 장면을 보셨다. 이미 중성화된 녀석이니 살펴보고 포획하라고 하셨는데 중성화 사업을 방해한다며 경찰까지 부르는 소란까지 생겼단다. 귀요미는 끌려갔다 이틀 만에 돌아왔다.

꼬짤. 녀석은 차가운 파란 눈으로 우리 눈치를 보곤 했다. 할 수 없이 밥은 주면서도 구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꼬짤' 녀석을 무슨 일이 있어도 중성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출몰 시간도 랜덤이라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아로가 이 녀석에게 목을 매는 게 보여 우리를 더 열 받게(?) 했다. 아로가 겨우내 쫒아다니던 냥이가 바로 이 녀석이었다.

봄이 오면서 공원은 수컷 냥이들의 거대한 영역 싸움 장이 된다. 나로서는 평생 알 수 없었을 일을 아롱이 덕분에 알게 된 것이다. 공원 고양이계의 알파 수컷이 어떤 놈인지 알고 싶을 까닭이 있을까? 돌보는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때 문제가 된다는 것뿐이지.

은토끼님은 고등어를 포획해 보내면서 포획 담당자에게 아로와 아미를 보여주셨다. 그 담당자는 둘을 보고 '곧 새끼를 낳을 녀석들이라 중성화는 안 된다.'라고 했단다.

중성화되어 돌아온 고등어는 우리를 보고 냥냥 거리더니 울며 달아났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나타나 이전처럼 다리에 감기고 애교를 부렸다. 수술 상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하다고. 밥은 잘 챙겨줄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아로 아미 곁에 꼭 붙어 있으라고 말했다. 그 순간까지 나는 앞으로 고등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밥만 제대로 먹여도 아무 문제없이 생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2월 22일. 아미가 없어졌다. 고등어가 돌아오자마자 사라진 것이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고등어는 가끔 본가에 가는 느낌으로 며칠 어디론가 갔다 돌아왔다. 그러나 아미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처음엔 새끼 낳을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나 생각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주변만이 아니라 더 멀리 돌아다니며 불렀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정확히 알아듣는다. 어디선가 있다가도 부르면 반드시 나온다. 밥 먹으라고 부르는데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한 거다.

24일 저녁 무렵 아미가 돌아왔다. 중성화가 되어! 구청 중성화 사업을 맡아서 하는 병원에 전화해 알아보니 누군가 아미를 중성화시켜 달라고 포획해 보냈다는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새끼를 낳을 녀석을. 은토끼님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말도 못 하고 벌벌 떠실 정도였다. 돌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안 보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상황만 괜찮으면 보내려 했었다. 위험하다고 해서 안 보낸 거지. 포획 담당자가 보고 그 자리에서 안된다고 판단한 아이를 돌보는 자원봉사자에게 말 한마디 없이 데려다 중성화시킨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싶었다.

사람을 믿고 잘 따르는 것도 이런 때는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암컷인 데다 출산이 임박했던 아이라 우리는 서둘러 인근 동물 병원에 아미를 데려다 입원시켰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수술 상처의 붕대를 풀 수 있을 때까지는 입원시켜 달라고 맡겼다. 벌벌 떨며 겁에 질려 돌아왔는 데도 아미는 순한 성격대로 일주일간 입원했다 퇴원했다. 지난번 엉덩이 상처로 병원에 데려가려다 난리가 나 청심환을 먹게 만든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아미 사건으로 은토끼님은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으셨다. 자신이 더 잘 보살폈어야 하는데 제대로 아이를 지키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신 것이다. 그러나 공원에 사는 아이를 우리가 무슨 수로 24시간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아미와 아로에게 새끼를 가지게 만든 녀석은 꼬짤인 모양이었다. 아미가 중성화되기 전이다. 우연히 지나가다 아미가 '꼬짤'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녀석은 아미를 흘깃 보고 그즈음 공을 들이는 다른 암컷에게 가 버려 나를 열 받게(?) 했다. 우리는 '꼬짤'에게 밥을 주면서 '아로 아미한테 잘해라. 그러라고 밥도 주는 거다.'며 구박 같은 소리를 꼬박꼬박 했다.

그런데, 새끼를 강제로 잃은 아미의 비극이 여기서 끝났을까? 중성화되었지만 제 수명대로 잘 지낼 것 같아 보였던 고등어는 오래 아이들과 어울려 잘 살았을까?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정말 순진한 데다 뭘 모르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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