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영역의 수컷 고양이들과 싸워 주변을 장악하는 게 일인 고양이들이 있다. 새끼를 낳을 암컷들만 남기고 예외 없이 모두 쫓아버린다. 일종의 영역 다툼이다. 1월부터 고양이 울음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그걸 나는 고양이들의 발정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다.
인간들에게는 윤리와 도덕이라는 게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고양이계에도 그런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아롱이 가족들을 돌보면서 가끔 나는 사람의 잣대를 고양이에게 적용해 화를 내거나 부당하게 야단을 친 적이 제법 있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도 몰랐다.
짐작이지만 우리는 아롱이 새끼들의 아빠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조각공원에서 연구소 주변을 관리하는 알파 수컷이 아롱이의 첫 남편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유는 있다. 아롱이 새끼들이 아직 어릴 때 우리가 '아빠'라고 불렀던 그 턱시도 냥이가 자주 밥자리 주변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치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 암컷들은 거의 그 녀석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하루는 미술관 야외 조각품 주변을 지나다 '아빠' 녀석을 보게 되었다. 누가 봐도 새끼 삼색이 냥이를 돌보는 모양새였다. 조각품 주위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어린 냥이를 녀석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혼자 새끼들을 돌보며 고군분투하는 아롱이 생각이 났다. 울컥했다.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향해
"너! 아롱이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응? 여기저기 새끼 낳고 돌아다니는 거. 이 자식이~ 정말!"
나도 모르게 삿대질을 하며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녀석이 분명 움찔한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아롱이라고 말할 때 더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던 내가 도대체 고양이를 상대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자리를 떴다. 그 녀석은 그해 늦여름부터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녀석이 그 구역을 관리할 때는 박물관 주변이 나름 평화가 있었다.
고양이를 돌보는 고양이 보호 협회 남자 회원 분이 '꼬짤'이란 녀석이 주변 애들을 못살게 군다고 내가 하소연하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 그 녀석들 따지고 보면 다 친척인데.-
나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원은 빙 둘러 모두 대로다. 24시간 차가 다니는 대로를 뚫고 고양이들이 유입되기는 상당히 힘들다.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일이다. 귀요미 주변에서 치즈 냥이들 밥을 주고 있을 때였다. 그 아이들을 돌보는 분은 따로 있다. 다만 자주 오시지 않을 뿐이다. 근처를 지나던 아주머니가 치즈 냥이 하나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집에서 기르던 아이라고 하셨다.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셔서 내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고. 목줄을 한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셔서 살펴보니 과연 그런 흔적이 있었다. 어쩐지 사람을 특별히 경계하는 것 같지 않아 평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다롱이같이 막무가내로 아롱이 먹이에 입을 대고 먹는 녀석도 있으니 그러려니 했었다.
작년 여름 무렵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던 녀석은 구내염을 앓고 있는지 턱 주변으로 지저분하게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후부터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나타나면 아롱이가 밥을 먹다가도 슬그머니 양보하는 걸 본 적이 있어 근처에 오면 밥을 챙겨주고는 했다. 물론 은토끼님은 주변에 오는 어떤 고양이라도 다 챙기셨으니 특별할 게 없기는 하다. 우리는 혹 그릇이 섞여 애들에게도 구내염이 생길까 봐 항상 여분의 그릇을 준비해 따로 밥을 주었다.
'아빠' 다음으로 나타난 녀석이 바로 '꼬짤'이었다. 아마 늦가을이 되기 전에 녀석이 박물관과 미술관 주변을 완전히 접수한 것 같았다. 대놓고 아로와 아미가 있는 장소에 나타나 자기 집처럼 밥을 얻어먹었다. 녀석은 우리를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집에 들어가 잠도 잤다. 애들은 녀석을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들을 지켜주는 보호자처럼 받아들였다.
짜증 나는 건 왜인지 아로가 이 녀석에게 목을 매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여서다. 솔직히 아로가 너무 아까웠다. 아롱이 새끼 네 마리 중 제일 예쁘게 생겼는데….
오죽하면 '아로야! 자존심 좀 챙기지? 네가 뭐가 부족해서 저런 놈을?' 할 정도였다. 사위가 마음에 안 드는 장모 기분을 우리가 느낀 게 아닐까?
지난 봄이었다. 박물관 뒤에서 우연히 녀석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야! 너 영주가 영지 순찰하는 거 같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파란 눈으로 흘깃 내 손을 보더니 '흥!'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가 버렸다. 먹거리가 들려 있지 않다는 걸 파악하자마자였다고나 할까. 당시는 아롱이 밥을 그 주변에서 먹였었다. 그런데 녀석이 주변을 돌며 아롱이를 자꾸 쫓아내는 느낌이 들어 나도 기분이 상해 있었다. 아롱이가 밥자리를 수시로 옮기는 데다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재수 없는 상대를 만났다는 느낌을 팍팍 주고받았다고나 할까?
꼬짤이 두고두고 우리 미움을 산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귀요미처럼 주변에 있는 수컷들을 모두 쫓아낸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밥자리에서 함께 겨울을 지낸 고등어와 다롱이 나중에는 자기 새끼를 가졌다 잃은 아미까지 녀석에게 쫓겨나는 일이 생겨서였다. 거기서 함께 지내는 냥이들에게 그 장소는 서식지 중 하나가 아니다. 녀석의 괴롭힘은 거기 있는 냥이들의 생존 문제를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주 심각하게.
모든 일의 출발점은 3월 9일 아로 배가 꺼지며 시작됐다. 아로의 배는 오전에는 반만 꺼져있더니 오후에는 완전히 꺼졌다. 나는 당연히 아로가 제 엄마 아롱이처럼 최소 2개월은 우리에게 새끼를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서 출산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오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