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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냥이 아롱이 - 20. 고양이 산후 우울증?

by 권영순

아로가 새끼를 낳으면서 아롱이와 우리는 갑자기 할머니가 되었다. 아니, 증조할머닌가? 아롱이가 우리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니. 아무튼 서열이 이상하게 꼬인 느낌이었다. 겨우 일 년 만에. 고양이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일 수 있겠지만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였다.

아로가 새끼를 낳은 장소는 바로 그 아이들이 서식하는 집 중 하나였다. 냥이들은 가을과 겨울을 4개의 집에서 잠도 자고 비나 눈 그리고 추위를 피했었다. 나는 냥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잠자리를 고르는지 잘 모른다. 밥을 주러 가면 이미 다 뛰어나오고 있어 어디서 자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특별히 자기 것이라고 고집하는 집은 없어 보였다. 눈이나 비 오는 날 집 안에다 밥을 넣어주다 보면 집 하나에 둘이 들어가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아로가 새끼를 낳으면서 여러 가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애들 집 청소를 해 본 적이 없다. 모두 은토끼님이 하셨다. 집부터 각종 필요한 물품은 모두 은토끼님이 사다 나르시고 설치하신 다음 청소까지 하신 것이다. 겨우 애들 밥이나 챙기는 내게 은토끼님은 항상 고맙다고 하신다.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많이 미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밥을 제때 챙기는 것도 상당히 벅차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은토끼님이 하시는 걸 보면 공원에서 태어났지만 이 아이들은 정말 복 받은 애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롱이 딸 아로가 새끼를 낳은 다음 날이다. 은토끼님은 집을 청소하시다 아로 새끼들을 발견하셨단다. 집에 깔아 둔 담요를 꺼내 터는 데 거기서 새끼들이 우르르 떨어져 아신 모양이었다. 모두 여섯 마리. 그중 한 마리는 태어나면서 잘못된 모양인지 이미 죽어 있더라고 나에게 알려주셨다. 집을 청소하실 때 항상 일회용 비닐장갑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냄새가 묻지는 않았을 거라면서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셨다.

나는 정말 놀랐다. 아로가 많은 부분 사람 도움을 받아 자란 것은 분명하다. 두 달 정도 제 엄마가 키웠으나 엄마 아롱이 역시 사람들 손에서 밥을 받아먹고 새끼들을 키웠다. 사람들 도움이 없었다면 아롱이 새끼 네 마리 모두의 생존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 새끼를 데리고 나오는 삼색이들 중 네 마리를 키우는 어미들은 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한 두 마리 데리고 나온다. 그 녀석들조차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새끼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봄가을에 우르르 새끼들이 쏟아지는 것 같아도 의외로 살아남는 고양이들이 별로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로가 낳은 새끼들은 모두 '꼬짤'처럼 꼬리가 아주 짧았다. 누구 새끼인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공원에서 까로 까미.jpg 까미와 까로 모두 꼬리가 길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다.
그래도 화목한 아이들.jpg 아미와 아로 역시 꼬리가 길고 탐스럽다. 업둥이 고등어도 밥 먹을 때는 꼬리를 말고 앉아야 한다.

시어머니를 미워하면 시어머니 닮은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말을 우리는 실감했다. 모두 '꼬짤'을 닮은 아로 새끼들을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유전자의 신비(?)를 다시 확인해서라고나 할까?

갑자기 할머니가 되는 것도 마뜩지 않은 데 거기다 귀엽지도 않은 녀석의 새끼들까지 돌볼 처지(?)가 되다니? 그렇다고 새끼들이 아주 귀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롱이 아이들만큼 깊은 애정이 생기지 않는 건 분명했다. 아마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은토끼님은 아로의 새끼들에게도 지극정성이셨으니 말이다.

'꼬짤'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상대였다. 게다가 그곳에 아로가 새끼를 낳으면서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아로 새끼들은 눈을 뜨고 집을 나설 수 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의 장난감이 된 느낌이었다. 심지어 집에서 함부로 꺼내 만져보고 먹이면 안 되는 먹이를 들고 와 그릇에 부어주고 갔다. 밥을 주러 가 보면 이미 그런 상황이 벌어져 있어 우리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새끼들을 만지는 사람들에게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입양하실 거예요?"라는 물음이었다. 사람 냄새가 묻으면 어미가 젖을 먹이지 않는 걸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느냐는 질책도 수시로 해야 했다.

아로가 새끼를 낳기 전 2월 말에 공원 조경팀은 억새풀을 모두 베어냈다. 은토끼님은 바로 직전에 집을 옮겨주셨다. 제법 가지가 우거져 사람들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명자나무 아래였다. 하지만 아로가 그곳에 새끼를 낳은 걸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피해 가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사람들이 새끼들을 함부로 만지고 데리고 놀기 시작하자 아로에게 이상 반응이 왔다. 아로는 사람들을 향해 발톱을 내서 할퀴는 녀석이 아니다. 아주 유순한 아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자 아로는 다른 방법으로 일종의 시위를 했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지 않은 것이다. 새끼들을 돌보지도 않았다. 어쩌다 나타나는 '꼬짤'을 따라다니느라 새끼들은 나 몰라라 하는 모양새였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때부터 아로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새끼들을 낳고 밥을 삼키듯이 먹던 아롱이랑 달리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아로에게 뭐라도 먹여보려고 좋아할 만한 캔이나 파우치들을 이것저것 구입했으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젖을 먹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새끼들에게 캣 밀크라는 것도 구입해 먹여봤다. 난 사실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아로의 불안감은 다른 행동으로도 나타났다. 은토끼님이 가 보면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하셨다. 새끼들이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같았다. 그러나 그건 고양이 아로의 생각이었다. 아로의 산후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은토끼님과 나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까미와 까로가 입양되고 아롱이가 독립해 나간 가을 이후 이듬해 봄이 오기까지 아무 문제없이 서식하던 다른 냥이들은 아로의 이런 행동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당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새끼를 낳은 아로 때문에 나나 은토끼님은 하루하루가 불안 불안할 지경이 되었다. 점점 일이 커지고 있었다. 심각한 것은 새끼들이 죽어가는 문제였다. 그건 나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오전에 냥이들 먹이를 챙겨 나갈 때마다 마음이 항상 조마조마했다.

솔직히 나는 두 해에 걸쳐 부모님이 돌아가신 트라우마를 다 이겨내지 못한 상태였다. 한겨울 폭설이 내리고 강풍이 불어도 밥을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으로 열심히 다니던 장소가 갈수록 꺼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겁이 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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