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께서 당신이 쓰시는 립스틱이 있는데 대신 사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온라인에는 찾아봐도 없어서 남편이 쉬는 날 함께 거의 백만 년 만에 백화점엘 다녀왔다. 단종된 제품인지 두 백화점과 화장품 편집샵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없었다. 허기지고 힘들어서 찾았던 백화점 식품관. 두둥! 정말 많이 바뀌어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던 것 같았는데 초록 식물들과 함께 거리를 둔 테이블들. 초록이들이 엄청 많았다. 코로나 여파인가 보다.
비건이 되어 백화점 식품관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혹시라도 비건 메뉴가 있을까 기대해보았지만 그 흔한 전주비빔밥조차도 흔한 나머지 고급화를 추구하는 식품관의 철학에 맞지 않았던가 찾을 수가 없었다. 갖은 산나물을 얹어 비벼먹는 그야말로 식이섬유와 영양덩어리인 전주비빔밥이 없다니!!! 소고기 편백 찜, 스테이크 플레이트, 육전 국수 등등 예전보다 더 화려한 메뉴들과 식사만큼 다양한 디저트들이 눈에 띄었다.
몇 바퀴를 둘러본 끝에 겨우 비빔밥집을 찾았다. (다행히 비건이 아닌 남편이 다음날 건강검진 예약이 잡혀있어서 자극적인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했고, 편한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었다. ) 집밥 이야기란 곳의 메뉴판 구석에 조그맣게 쓰여 있었던 할머니 비빔밥. 이곳의 주 메뉴인 멍게 비빔밥에서 멍게만 뺀 비빔밥인 듯했다. 새싹만 올려져 있었다. 할머니들은 나물을 더 좋아하는데 할머니라는 이름과는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시래깃국, 깍두기와 함께 먹었다. 비건이 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으므로 이미 입맛도 좀 변한 상태였다. 거기다 아침에 두유 하나만 먹고 운동하고 나서 바로 백화점을 여러 군데 걸어 다녔더니 그 심플한 비빔밥이 정말 맛있었다.
할매들은 좋아하시지 않을 것같은 할매 비빔밥
예전 같았으면 누가 사준다고 제발 같이 먹자고 해도 백화점 식품관에서 새싹 비빔밥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채식하는 사람이 아니면, 식단을 절제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어느 누가 새싹 비빔밥을 사 먹을 것인가.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수제 돈가스와 랍스터 앤 스테이크, 마라탕, 명란 크림 파스타, 수제 버거들을 제쳐 놓고 말이다. 좀 더 건강을 생각해서 편백 소고기 찜과 초밥, 회덮밥을 제쳐놓고서 말이다. 누가 7천 원을 주고 심심 그 자체인 새싹 비빔밥을 사 먹을까. 정말 세상엔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들 천지다.
채식주의자의 눈으로 본 바깥세상은 좀 처참했다. 나 같은 사람이야 집에서 조절하며 식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도대체 사회생활하는 젊은 비건들은 어떻게 먹고 지내고 있을까? 이리저리 매번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 것 같고 근처에 비건 식당이 있다고 해도 매번 같은 메뉴 먹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도시락을 매번 싸다니는 것도 힘들 듯하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비건 라이프를 유지해야 할 듯해 보였다. 아직은 우리나라 비건들은 일상생활에서 선택권을 갖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는 힘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채식 라면과 떡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나는 마치 외국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백화점 식품관을 체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세계에 눈을 뜨고 나면 공기같이 당연시했던 이전의 세계가 달리 보이며 이 세계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격 신경 쓰지 않고 먹고 싶은 고기를 마음껏 먹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현미밥에 나물 반찬과 두부만을 먹고도 만족할 줄 아는 게 잘 사는 것일까. 혀 끝의 감각에 사로잡혀 뭔가를 더욱 먹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비워내 보고 싶다. 가볍게 만들 때 몸은 더 건강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생의 다른 많은 부분들을 좋은 것들로 채워갈 에너지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비건들의 선택지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