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다이어트라고 해본 적이 없다. 말라서가 아니다. 날씬한 몸매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기엔 의지가 너무 박약해서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예쁜 옷 입고 다니고 인생 절정을 사는 친구들을 보고 자극받지 않은 적도 없다. 언제나 자극받았고 언제나 다이어트하자고 결심해도 곧 음식 앞에서는 다이어트고 머고 먹고 보자였다. 참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 그게 나였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그냥 먹고 싶은 음식을 먹되, 밤에 뭔가를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밤만 되면 생각나는 온갖 자극적은 음식들, 맥주 한잔 하고 싶을 때는 기름진 안주들과 온갖 하염없이 질겅질겅 씹고 싶은 주전부리들 그리고 라면. 먹고 나면 더부룩하고 죄책감 느끼고 다음날 퉁퉁부은 얼굴의 주범이지만 그것들 앞에서는 그냥 세상 근심 다 사라지고 느긋해지고, 행복해졌다. 그런데 낮에도 맛있는 것들을 먹고 밤에도 먹자니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맥주 한 캔에 작은 봉지과자 하나 먹기는 해도 요리를 먹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더는 찌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허벅지와 팔뚝, 뱃살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부터는 살아야겠기에, 책임질 아이들이 있기에 뭔가 인생에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책들을 읽어보니 건강해지는 데는 그런 화려한 스킬과 레시피를 요하는 음식들이 필요 없단다. 그냥 현미밥에 심심한 채소 반찬, 콩, 두부, 된장국 정도만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차리던 밥상에서 온갖 동물성 음식만 빼고 먹기로 했다.
현미를 100퍼센트로 넣어 밥을 해봤더니 아이들이 잘 먹지를 않아서 결국 현미 1, 현미찹쌀 1, 백미 2로 밥을 짓는다. 가끔 병아리 콩 같은 것도 넣어서 밥을 한다. 8시간 이상 불려야 해서 귀찮기도 하다. 그래도 그냥 백미 밥보다 건강하다고 하니까 귀찮아도 밥 정도는 그렇게 정성을 들여본다. ( 급할 때는 백미밥 하기도 한다. ) 그 밥 위에 겉절이나, 시금치무침이나, 무생채, 구운 버섯 같은 채소 반찬들을 올리고, 낫또가 있으면 낫또도 올린다. 두부조림 같은 것도 곁들인다. 고추장을 약간 넣고 비벼먹는다. 아침은 두유나 고구마 정도로 간단하게 먹고 점심과 저녁을 매일 이렇게 먹었더니 3달도 채 되지 않아 살이 4킬로 정도가 빠졌다. 밥양도 결코 적지 않았고 과일도 간식으로 많이 먹었는대도 살이 빠지니 신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맛이 바뀌고 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매일 가고 속이 편안하다. 더 이상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그리고 어쩌다 그런 음식을 먹게 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더부룩해지는 것이 몸에 무리가 온다는 것을 바로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 내 몸은 이러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어도 계속 먹고 싶었다. 분명 화장실을 잘 못 가고 있는대도 더부룩 한 줄도 모르고 계속 먹어댔다. 이제는 뭔가를 먹으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몸이 순환하기 시작하면서 먹는 것에 민감해졌다. 그래서 내 앞에 주어진 음식에 홀린 듯이 먹어치우던 패턴에서 벗어나 내가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골라서 차려먹고, 몸이 가벼워지니 식단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식탁에서 동물성 음식만 치웠을 뿐인데, 살이 저절로 빠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2킬로 빼는 것도 힘겨웠는데, 이러한 보상이 놀랍기만 하다. 가벼워지고 민감해진 몸이 좋다. 그리고 이제는 늘 먹는 그 비빔밥이 편하고 맛있다. 비빔밥이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거나 혹은 그런 음식들을 참으려고 할 것이고, 결국 이 식단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비빔밥이 이제는 나에게는 맛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음식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니 음식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홀린 듯이 정신없던 태도에서 신중한 태도로 그리고 그런 가벼운 삶을 즐기는 태도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글 쓰는 채식주의자. 이 얼마나 우아한 이름인지. 이제 드디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