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린 게 커피숍인데, 내가 마실 수 있는 커피를 파는 곳은 스타벅스 단 한 군데밖에 없다. 건강을 위해서 나는 카페인과 우유를 절제해야 한다. 비건이 된 지 6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커피에 관해서라면 외식하는 것 못지않게 불편하다. 디카페인 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숍은 몇 군데 있지만 우유 외에도 두유나 귀리 우유를 취급하는 곳은 스타벅스밖에 없다. 스타벅스를 가지 않는 친구도 있다. 가까이에 있는 커피숍을 놔두고 왜 스타벅스로 가야 하는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다. 라테가 마시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레몬차를 주문한다.
라테 한잔이 간절할 때는 많다. 혼자서 온종일 두 아들을 봐야 할 때, 하루 종일 할 일이 많을 때,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을 때, 심심한 오후, 비가 올 때,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등등 거의 매일인 듯하다. 그런데 참는다. 음식은 절제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절제하는 식단에 익숙해져 맛있기만 한데, 이상하게 커피는 참을 수밖에 없다. 참으면 폭발하게 되니까 디카페인 소이 라테라도 마시고 싶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걸어가기에도, 차를 타고 가기도 애매한 위치에 있는 데다 디카페인 소이 라테 톨 사이즈는 커피중에서도 비싼편이다. 망설이게 된다.
한 잔에 5900원인 디카페인 오트 라테. 빽다방가면 아메리카노를 4잔 살 수 있는 가격이다 ㅜㅜ
음료도 음식 범주에 넣을 수 있다면 라테는 내 소울 푸드다. 거의 매일 한잔씩 마셔댔다. 육아하면서 하루 한잔의 라테는 보약이나 마찬가지다. 인생 행복이자 힘이 돼주었던 너. 그립다 정말.
‘그랜드 올드 맨’이란 말이 있다. 나는 ‘노대가’는 못 되더라도 ‘졸리 올드 맨’이 되겠다.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노력하겠다. 눈 오는 날, 비 오시는 날, 돌아다니기 위하여 털신을 사겠다. 금년에 가려다가 못 간 설악산도 가고, 서귀포도 가고, 내장사 단풍도 꼭 보러 가겠다. -피천득의 인연 중에서
피천득 선생님은 원래 커피와 술을 전혀 못 드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며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와 술, 담배를 하겠다고 외치는 대목에서 짠해진다. 생리통과 두통에 시달려도 커피를 마시도록 노력하겠다고 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언제, 어디서나 라테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라테를 대체할 수 있는 소울푸드는 어디에 있을까. 디카페인 소이 라테로 채워질 수 있을까. 나도 '졸리 올드 우먼'이 되겠다고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