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 1년에 한 번 아이들, 남편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주장하고 싶은 날. 둘째가 아직 어리고, 코로나 시국이라 외식을 잘하지 않는데,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외식을 하자고 했다.
보리밥 정식 7000원 기본 상차림. 쌈도 나온다. 강된장에 나물 야채 넣고 비벼 맛있게 먹었다.
그곳은 보리밥, 청국장, 돌솥밥이 주메뉴다. 별도로 시켜야 하는 고등어구이나 오리고기가 있고, 정식은 온갖 산나물과 채소반찬들이 한 상 가득 나온다. 기본 상에 나오는 멸치볶음과 오징어 젓갈 외에는 전부 나물 같은 채소 반찬들로만 구성되어있다. 채식하기 전에도, 후에도 식구들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한우 초장집에서 생일 축하 식사를 했었다. 돈 많이 벌어서 자주 오자고 했었는데, 이제는 생일이라고 보리밥 집에 간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쉬웠을 것이다.
고소하고 쫀득한 버섯전
늘 집에서 집밥 하다가 외식하니까 이렇게 맛있고 편할 수가 없다. 고등어구이를 시켜서 아이들과 남편 먹이고 막걸리와 버섯전도시켰다. 남편도 맛있다고 해서 기뻤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이 디카페인 오트 라테를 사줘서인지 기분은 더 날아갈 듯했다. 아니 세상에, 식사만으로도 이렇게 기쁠 수가 있는 것인지. 예전엔 생일에는 어떻게 해서든 선물을 받아야 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어리고 예쁜 비서가 말하는 것처럼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반드시 원하는 물건이어야 했다. 이제 소박한 식당에서 외식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결혼생활 10년 만에 행복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결혼과 육아는 나를 절제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주었고 채식은 그 정점에 있다. 이제는 채식이 절제라기보다 즐기고 있으니
참 많이 발전했다. 행복은 확실히 절제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표고버섯 들깨 미역국이 먹고싶었지만 남편이 끓인 채식 미역국도 괜찮았다. 확실히 남편이 간을 잘 맞춘다.
오늘 남편은 떡, 양파, 두부를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며칠 동안 쓰고 고쳤다는 손편지도 주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감동 어린 시였다. 이렇게 아내를 감동시키는 손편지도 쓸 줄 알다니 남편도 10년 만에 많이 발전했다. 큰아이는 직접 만들고 쓴 카드를 주며 그동안 연습했던 생일 축하합니다 곡을 피아노로 치고 둘째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비싸고 예쁜 선물이 없어도, 소고기가 없어도 생일날 행복할 수 있는 스스로가 기특하다. 그동안 애썼다.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