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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Jan 04. 2022

채식주의자의 민낯

 어느 날 유튜브로 ‘생로병사의 비밀’의 ‘채식주의자의 민낯’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채식 라면을 자주 먹고, 간식으로 매일 떡을 먹는 비건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지방간 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뜨끔했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가장 난감할 때는 바쁜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쌀국수를 끓여먹어야 하나, 떡을 먹어야 하나. 비건이니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는데 그나마 탄수화물 가공식품들이 제일 만만해 보이긴 했다. 그전엔 컨디션이 별로인 날은 라면을 끓이거나, 생선 굽고, 김치에  계란 프라이하면 그냥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채소를 씻고 썰어서, 데치고, 무치고 볶는 과정을 매일매일 즐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많이 사다 씻어서 밀프렙 해놔도 편할 텐데 그놈의 씻고 썰고 데치는 일이 너무 귀찮은 거다. 그동안 육식파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채식과는 정말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았다.  


   

 채소는 일단 잘 상하니까 그때그때 부지런히 데치고 무치고 볶아서 잘해 먹어야 한다. 그래서 채소보다는 동물성 음식들이 반찬으로 만들기 편하다. 만두, 너겟, 햄, 돈가스 같은 가공육 식품들도 사두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나 몸이 좋지 않을 때 굽기만 해도 반찬이 되므로 자주는 먹지 않아도 편하게 이용했었다. 그런데 그게 비건 라이프를 시작한 이상 통하지 않았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평소 요리에 열정도 없는 나는 처음에 정말 채식이 난감했다. 야채란 고기 구울 때 상추, 깻잎, 배추 등등을 씻어 쌈 싸 먹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콩나물도 콩나물 국은 끓여도 콩나물 무침 반찬은 즐겨하지 않았다. 시금치도 씻고, 데치는 과정이 귀찮아 가끔 해 먹는 정도. 저녁 할 때 항상 메인으로 내는 고기반찬과 국이나 찌개 정도만 신경 썼지, 채소를 이용한 나머지 밑반찬은 너무 하찮게 여겼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으니 진짜 스스로를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근데 그놈의 씻고 데치고 써는 과정이 너무 귀찮다. 그래. 그럼 콩고기라는 게 있다는데 그거라도 한번 사볼까? 하며 써치를 하는 순간 밀 글루텐을 베이스로 만든 너겟도 있고 심지어 만두도 있고 갖가지 콩을 베이스로 하는 인스턴트, 반조리 식품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양은 적고 가격은 비쌌다. 너겟. 정말 양은 코딱지 만한데 비싸고 구워 먹어 보니 식감과 맛이 고기의 그것만 못했다. 그래도 오늘도 채식하는 데 성공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아서는데 씁쓸한 이 감정.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도 평소에 고기는 먹어도 가공육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지양하려 하지 않나. 적어도 수입산 고기는 먹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처음으로 사봤던 콩고기 제품과 두번째로 사본 너겟. 이두제품 이후로 식물식만 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비건 쿠키나 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분명 가격은 일반 디저트와는 차이가 있지만 찾아가서 사 먹으면 될 터였다. 세상엔 이미 비건을 위한 일반식을 흉내 낸 음식과 디저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목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데 인스턴트 콩 너겟이나 비건 쿠키, 비건 라면들을 사 먹으면서 내가 비건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반 정크푸드를 흉내 낸 그런 식품들은 비건 식품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역시 정크푸드는 정크푸드였던 것이다. 나는 지구적 사회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건이 아니라 개인의 안위와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심한(?) 비건이므로 내가 먹는 음식은 채소와 과일, 곡물 위주의 자연 식물 식이 어야 한다. (비건 식품 산업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비건들이 일반인들처럼 외식할 때도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고 또 존중받아야 하므로 비건 식품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야 하고 또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채식 인생 걸음마인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엔 노련한 비건이 되어 맛있는 비건 메뉴를 뚝딱뚝딱 만드는 것쯤 공기같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바쁘고 귀찮더라도 가공식품 사 먹는 일 없이, 열심히 씻고 썰어 데치고 무칠 것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좋아서 혈기가 넘치고, 지방간과 고혈압은 먹는 거냐며 묻는 그런 건강한 비건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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