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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Mar 31. 2022

아이에게 틱이 찾아왔다

3개월 만에 극복한 이야기

 

  이 모든 건 아이 초등학교 입학 후 주말 부부를 시작하면서부터다. 2년 전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세상이 멈췄을 때 두 아들들은 8살, 2살이었고 하필 남편은 다른 지방으로 근무하러 갔다.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는 두 아들을 데리고 독박 육아를 한 셈이다. 안 그래도 긴 육아로 인해 운동부족과 허술한 식단으로 몸이 많이 상해 있었는데, 밤에 자주 깨는 아이들 때문에 잠을 잘 못 자서 몸 여기저기가 많이도 아팠다.  둘째가 너무 어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하루 종일 붙어서 기저귀 갈고, 먹이고, 씻기는 와중에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해댔다. 청소, 재활용 같은 일들은 남편이 주말에 오면 맡기 기로하고 급한 대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만 신경 썼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너무도 버거웠다. 친정, 시댁 어디 하나 도움을 바랄 수 있는 형편도 못됐다.

   

  8살 큰애는 유치원생 티가 여전한 어린아이에 불과했지만 어린 아기인 동생과 혼자서 발버둥 치는 엄마 때문에 큰 어른이 되어버렸다. 밥 먹고, 샤워하고 자기 물건 챙기고, 공부하는 것 등등 모두 혼자 알아서 하도록 했다. 워낙 순한 아들이라 큰 불만 없이 모든 걸 알아서 잘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아들은 그 당시 집에 굴러다니는 공폰으로 폰 게임을 하루 30분씩 하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체력이 약해 잘 방전되곤 하던 나는 둘째를 낮잠 재우며 같이 자버리기 일쑤였다. 오전에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다 해놓고 우리가 자고 있을 동안 큰아이는 핸드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30분이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 넘게 게임을 할 때도 있었다.   

  

  내가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면 아마 2시간도 넘게 게임을 했을 것이다. 자다가 반드시 깨서 게임시간을 얘기하면 핸드폰을 황급히 끄거나 숨기며, "엄마, 피곤한데 더 자. 자도 돼." 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태블릿도 있었는데,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태블릿으로 혼자 유튜브도 보기 시작했다. 혼자서 한두 시간 흔한 남매, zack king, 탁주 tv, 허팝 같은 채널들을 보다가 내가 일어나면 화들짝 끄는 것이었다. 사실상 큰애는 엄마와 동생과 한 공간에 있었지만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빠는 집에 없고, 동생과 같이 자주 방전되는 엄마, 동생만 끼고 있고, 그렇지 않을 땐 집안일하느라 너무나 바쁜 엄마를 보는 큰애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하고 있었고 심지어 내 심부름도 하느라 바빴던 아이였다. 내 코가 석자였기 때문에 큰애를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둘째 기저귀를 갈아 줄 때면 물티슈를 갖다 주기도 하고, 내가 샤워할 동안 둘째를 봐주었던 큰애. 아빠는 주말에 와서 큰애에게 엄마가 바쁘고 힘드니까 네가 엄마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고 자주 얘기했다. 아이는 아빠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인터넷 게임중독에서 내 아이를 지키는 59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부모와 시간을 갖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가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가족의 상황은 아이가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완벽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를 방치한 적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날 수 없고, 갓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는 친구도 없었고,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집에 엄마가 있긴 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한 상황에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에 빠져들었다. 그때는 나 혼자도 너무 벅차서 아이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 그때의 아이를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 아빠의 부재로 마음도 불안정했을 것 같고 늘 지치고 피곤한 엄마의 눈치를 살폈을 아이가 가엾다.


  매일 한 시간 넘게 내가 자는 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얼마나 즐거웠을까. 사실 무슨 게임하는지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그냥 게임하는가 보다 하고 너무 오래 하지만 말라고 했을 뿐. 말썽 피우거나 내게 투덜거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있어주는 것에 오히려 더 고마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문제 상황 뒤엔 문제의 부모가 있다. 그러나 정신적 육체적 학대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상황에 던져진 부모의 어쩔 수 없는 행동들에 그 어느 누가 돌을 던지랴.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각각의 천차만별의 상황과 이유를 가진 부모들을 보며 안타깝다가도 이내 이해되는 심정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자라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므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보호자인 부모가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부모로서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생활과 코로나 상황에 조금씩 길들여지고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학교를 다시 가기 시작했고, 태권도도 다니기 시작했지만 게임하던 습관은 그대로 남아서 공부를 다 하고 나면 게임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30분만 하려고 하니 성에 차지 않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던 아이. 그러다 다시 원격수업을 하게 되었고, 아이의 생활 패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다. 이것으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동생 때문에 첫째를 살뜰히 케어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생활계획표를 만들어서 아이가 해야 할 리스트를 칸에 적어 넣고 아이가 그 리스트를 하나씩 할 때마다 스스로 리스트를 삭제해 나가는 식으로 하도록 유도했다. 아이는 그 표와 내 태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그 이후부터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살짝살짝 깜빡이던 눈이 얼굴 전체를 찡그러트리며 깜빡이는 걸로 바뀌었을 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때 티브이를 볼 때도 그랬지만 폰 게임을 할 때가 제일 심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발달 심리 센터에 전화를 해서 몇십만 원짜리 상담 예약도 잡았다.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증상은 갈수록 심해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으며, 드물긴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주말에 남편과 울면서 대화한 적도 있다. 남편은 이게 다 자기 탓이라며 주말 부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한탄했다.      


  어느 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서천석의 팟캐스트중 틱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틱이라는 용어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말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증상을 일컫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틱은 아들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증상이며 대부분 그냥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했다. 미성숙한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자극을 받아 틱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것이 분명한데, 부모들이 불안한 나머지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아이에게 힘든 치료를 시킨다고 했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냥 지켜보라고 하는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있자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뇌에 불필요한 자극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힘들지만 폰 게임을 제한했고, 힘들더라도 나는 아이의 엄마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이와 물리적으로 좋은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둘째를 어렵게 어린이 집에 보낼 수 있게 되어 큰애와 약간의 짬이라도 나면 밖에 나가 배드민턴을 쳤다. 공부는 수학 문제집 한 장 영어 듣고 읽기 20분으로 줄이고, 티브이를 함께 보고, 책도 같이 봤다.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주말을 껴서 아빠가 계신 곳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주말에는 온 가족이 오랜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자전거를 타고 보드를 타고,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게임을 못해서 불만인 아들을 위해 닌텐도 게임기를 사서  큰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엄마, 아빠와 같이 하도록 했다. 단 주말만 한 시간 동안 하게 했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의 미디어 생활 규칙은 이렇게 정착되었고 10살인 아직도 유지 중이다. 게임을 하기 위한 스마트 폰은 노. 뛰어노는 시간은 예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예스. 게임은 닌텐도로 부모와 함께 정해진 시간 동안 예스. 1년 반 정도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남편이 집에 돌아온 후, 내가 둘째를 보는 동안 남편은 첫째와 보드게임도 하고 몸으로 뒹굴기도 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을 하며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눈을 깜빡이지 않게 됐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 가장 덕이 되었다. 비축한 에너지를 큰애에게 정성을 들이는데 쏟을 수 있어서 기뻤다. 큰애의 틱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을 내게 심어준 경험이었다. 틱이 오지 않았더라면 큰애가 마땅히 누려야 할 부모의 관심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둘째에 견주어 다 큰 형이라면서 아이에게 소홀하며 오로지 학습에만 욕심냈을 것이다. 활발하지만 섬세하기도 한 아이의 내면에 더 관심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매일 하며 더 자극적인 게임을 찾아 헤매도록 내버려 두었을지도 모른다. 틱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 커버린 듯한 우리 큰애가 여전히 내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공부도 하는 게 맞지만 여전히 소통과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엄마로서 깨어있으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제는 추억이 된 틱, 나를 일깨워주러 와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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