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ca May 25. 2022

내가 열폭하는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서 삼 남매 중 둘째 창희는 돈이 콤플렉스인 캐릭터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고 차가 없어서 연애를 포기한다. 그리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면서 부자이기도 한 동료에 대해 열폭한다. 인생에 돈을 중심에 놓고 돈이 없다며 불평불만하고 있는데 상대는 돈이 너무 많은 대다 대놓고 뻔뻔한 인간이라면 나는 열폭하게 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은 미친년인가 보다 하는데 나만 유독 그 사람에 대해 계속해서 떠들고 열폭하는 것은 상대와 나를 비교하며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한데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2년 전 이사 와서 알게 된  한 엄마가 있다. 남편 벌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 부동산 법인, 임대사업자를 갖고 있으며 전국구로 엄청난 부동산 자산을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업 부동산 투자자이다.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노동을 하지 않는 그는 어린아이들을 집에서 풀타임으로 케어하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체력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놀아준다. 남편이 월 천은 갖다 주는 이웃도 있지만 그런 집들은 부럽지 않은데 유독 이 엄마가 그렇게 부러웠다. 많이 통통해도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 당시 내가 갖지 못한 걸 그녀는 다 갖고 있었다. 체력, 경제적 자유, 자존감. 육아할 때 이 세 가지를 갖고 있다면 게임 끝이다. 육아가 너무나 즐거울 것만 같다. 사실 육아뿐만 아니라 인생 살면서 성공하길 바라는 모든 인간들이 욕망하는 것들이지 않을까. 엄마가 그런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바람직한 육아를 할 수 있다고 백 프로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고, 엄마의 높은 자존감과 체력으로 아이는 더 밝고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또래들의 고민이 그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려면 경력이 단절되고, 외벌이라서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돈을 벌러 나가면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이케어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아프다. 내가 아픈 지점에서 전혀 공감이 안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여행 가는 이야기. 아이들이 좀 크면 남편을 휴직시키고 가족 모두 하와이나 괌으로 가서 1년살이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 남편이 아무리 박봉이라도 바가지 한번 긁은 적이 없다는 이야기, 도우미 이모님을 부르고, 남편 눈치를 보지 않고 친정엄마를 모시고 같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필라테스를 다니며, 명절엔 양가 부모님께 용돈과 함께 한우를 선물한다는 얘기, 전국 곳곳에 아파트와 서울에 상가도 갖고 있다는 얘기 등등. 나는 집에 돌아와 자꾸 그가 한 이야기들을 곱씹게 되는 것이다. 당시 주말부부에다 혼자서 두 아들을 케어하며 아픈 몸, 외벌이라 여유롭지 못한 살림살이, 자주 아프고 힘들어 아이들에게 욱하게 되는 최악의 육아 태도, 경력단절로 자신감도 많이 부족했던 터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모두 가진 그가 그렇게도 거슬리고 약 올라 괴로워하다 맥주 한 캔 마시고 잠든 밤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결혼 10년 차 정도 되면 그래요? 나는 아직 신혼이라 그런가 나 정말 열심히 살거든요.” 빈혈이 심해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던 때,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두고 비꼬는 듯한 말. 음... 이 여자도 나에 대해 열등감이 있구나.  나보고 종종 뭐를 어떻게 먹냐, 운동은 하냐, 체질이 살 안 찌는 체질인가 본데 좋겠다 등등 이런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하긴 했었다. 갈수록 살이 더 찌는 그가 어느 날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를 보고 열폭한 날이 그날이지 않을까 싶다.  "대출 한 00 정도 되죠? 나는 다른 엄마들이 하는 몇 마디만 들어봐도 견적 나오거든요." 이 말 뒤로 이어지는 각종 럭셔리 주말 레저 이야기들. 이쯤 되면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딱 끊고 안 보고 싶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잘 노니 안 볼 수도 없고 매일 놀이터에서 최소 1시간은 꼭 봐야만 한다. 난 그 여자를 보면 내가 갖고 싶은 것 다 가진 년으로 보이지만 그 여자는 나를 보고 자기가 평생 갖지 못한 단 한 가지를 가진 꼴 보기 싫은 년으로 보이겠지.


  나는 무엇을 가지게 되면 더 이상 그 여자가 싫지 않게 될까. 극 중 창희는 구 씨의 롤스로이스를 빌려 타고 다니며 깨닫게 된다. 자기가 돈에 메인 사람이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걸. 5억짜리 과시용 외제차를 타면서 폼 재러 다니는 게 아니라 혼자 인적 없는 조용한 곳만 찾아다니며 불평불만이 없어지고 한없이 평안해지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내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 여자가 지난 20년간 노력해서 얻은 것들을 나는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열폭하는 것은 나를 망가트리는 짓일 뿐이다. 그 엄마는 염창희의 말처럼 돈에 깃발을 꽂고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을 토대로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자신의 자산이 얼마나 많은지, 대학은 어디 나왔는지 석사는 어디서 했는지,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할 때 내 마음이 편안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주말부부를 끝내자고 합의하고 남편이 이직을 했다.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열폭 행진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어린 둘째 육아와 집안 살림에 손 하나가 얼마나 큰 도움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아이들은 학교로, 원으로 가기 시작했고 9년의 육아 끝에 드디어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여름부터 운동, 채식을 하며 망가진 몸을 돌보고, 텅 빈 영혼을 위해 감사 일기도 쓰고 브런치에 글도 올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우 와우와 하며 닥치는 대로 독서했지만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더 가지고 읽은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민낯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소수의 진짜 친구들만 연락하고 피곤한 만남은 더 이상 가지지 않는다. 소설, 에세이만 읽다가 재테크 책을 100권  정도 읽고 완전히 브레인 워시 된 후 투자란 것도 해보았다.


  운동하니 체력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고, 채식을 하니 몸의 온갖 염증 현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늘어난 자산으로 인해서 경력단절로 인한 열등감이 사그라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게도 내 글을 읽어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쓰면서 마음속 허물을 벗다 보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주 조금은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질투와 열등감이라는 연료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해졌는가. 여전히 실망할 때도 있고 욱하는 날도 있지만 예전과 다른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순간적 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괴롭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상대를 통해 거울을 들여다보고난 후 술 먹고 욕하다 다시 원래대로 살면서 정신 승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깨닫고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다른 행동을 한다. 그게 내게는 운동, 채식, 공부하고 사색하는 독서, 브런치 글쓰기, 감사일기, 부동산 투자였다.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돼있는 나. 중독이었던 라테를 안 마신 지 1년이 되어간다. 심지어 친구와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하던 내가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생각한 후 행동하기. 옆집 엄마도 행동하는 여자라 그런지 요즘 살이 좀 빠졌다. 거울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너와 나에게 건배!





  

  

매거진의 이전글 저녁에 갑자기 혼자 나가서 컵라면 사 먹고 들어온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