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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4. 2022

위기의 주말부부


  남편은 한때 지방 근무가 잦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곁에 없었던 기간이 길다. 큰애가 어렸을 땐 주말 근무도 잦았고, 해외 근무를 1년 6개월, 그 이후에도 다른 지방에 6개월 근무를 했으며 둘째가 2살이었던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다른 지방에 1년 3개월 정도 떨어져 있었다. 큰애가 어렸을 땐 친정어머니가 건강이 좋았던 편이라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젠 남편이 옆에 없어도 오롯이 혼자서 아이 둘을 돌봐야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국에 큰애는 초등학교 입학을 했지만 등교를 하지 못했고, 둘째는 원에 가기에는 이른 2살이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두 남자아이들과 셋이서 집에 갇혀 지내야만 했던 지난 2년의 시간.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시국에 그 누군들 힘들지 않았을까만,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와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워야 하는 2살 남아를 혼자서 케어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밤에 자주 깨는 둘째 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이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학습격차가 벌어질 걸 생각하면 집에서 큰애를 내가 어떻게라도 시켜야 했다. 하지만 어린 둘째를 데리고서 공부를 봐주기가 힘이 들었다.     


  아들들이라 어떻게든 남아도는 에너지를 발산을 시켜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하며 밥하고 치우고, 씻기고 먹이는 날 끝에는 기진맥진한 나를 위한 시간이 무조건 필요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으므로 동네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낙으로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웬만한 우리나라 대하소설들을 다 섭렵했다. 한국인이라면 죽기 전에 읽어봐야 한다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 한강, 홍명희의 임꺽정, 최명희의 혼불과 같은 책들이다. 10시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내일 먹일 것을 대충 챙겨놓고, 읽다 보면 1시. 내일 아침까지 푹 자면 되는데, 아이들이 깨기 때문에 숙면을 못하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야 해서 늘 잠이 부족했다.      


  아침엔 늘 천근만근 힘들었고, 화가 자주 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에게 심지어 일찍 일어난다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아침을 대충 차려주고는 맛없어서 안 먹는다고 투정 부리면 욱하게 되고, 오전 내내 비몽사몽 힘들게 버티다 둘째가 낮잠을 자면 같이 뻗어버렸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힘에 부쳤다.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들만 겨우 해내었다. 주말에 남편이 오면 그도 피곤하니 잠을 자야 했다. 또 그런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화가 나니까 마음을 닫게 되고 자연히 사이는 좋지 못했다. 남편은 늘 미안해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곁에서 같이 있어 주지 못하고 아이들 크는 것도 못 본다고 했다.      


  남편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나. 떨어져 있을 땐 미안하다가도 보고 있으면 속에서 또 열불이 났다. 좋아서 결혼해놓고서 미쳤다고 이 인간이랑 결혼해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나 싶었다. 남편을 원망하고, 그런 남편과 함께 사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속으로 부글부글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게 행동하면 또 욱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자꾸만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버리는 내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치의 만행이 자행되었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그 강제수용소에서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우리 인간은 환경을 탓하며 환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강제수용소에서 물론 극소수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과 식량 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내 삶에도 적용해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이었으므로 강제수용소의 환경과는 달랐지만, 불안하고 부정적인 나는 그 상황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이었고 환경을 탓하며 내 곁에 없었던 남편을 탓하고, 내 능력을 탓하며 아이들에게,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 바빴다. 아우슈비츠의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 다짐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짜증내고 불평하기 바빴는데 무능력하다고 한탄하지 않고,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갈 만한 내면의 선택의 여지가 있다. 선택지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라는 역할을 선택한 사람이므로 말 못 하는 둘째의 기저귀를 갈면서도 갓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의 공부를 봐주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힘들어하는 대신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부정적인 나는 한 번의 결심만으로 마음을 바꿔먹기가 쉽지 않으므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주문을 내게 걸었다. 편부모 가정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짐과 동시에 아이들을 오롯이 혼자서 양육해야 하므로 그런 상황보다는 나은 상황이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이혼했다, 전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고 심지어 주말에 찾아와서 소파에서 자기도 하지만 청소도 해주고 아이들과 잠시라도 놀아주기까지 한다.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아이들만 돌보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편을 보는 시끄럽던 나의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 마음의 디폴트 값을 다르게 설정하고 나니 원망과 분노의 정서가 감사와 다행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일체유심조. 내 상황을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 천국으로 만들 것인지는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눈을 뜨게 해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빅터 프랭클 박사님이 고맙다. 앞으로 더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주말부부와 독박 육아의 추억을 잊지 않는다면 더 지혜롭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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