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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3. 2022

놀이터 인간관계


  여느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놀이터에서도 주도하는 무리가 있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소외되지 않고 그 무리의 아이들과 같이 편안하게 놀 수 있게 엄마들 무리에 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어떤 놀이터에서나 말이 많은 그 엄마들이 불편하다. 내 기준에 그들은 목소리가 너무 크고, 말이 많다. ‘누구 집에서 모이자’, ‘아이들 그룹수업을 만들자’, ‘주말에 어디서 만나서 아이들 데리고 놀자’고 한다. 나는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내 고집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그들을 일방적으로 따르지는 못하겠다. 계속 연기를 해보다가 결국 불편하고 버거워 피하기도 했다. 내 에너지 레벨은 우리 가족 하나 감당하기에도 벅차 늘 바닥인데 그 넘치는 에너지를 내가 받아낼 수가 없어 그런 사람들을 대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외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그들이 때때로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존재감이 없어질 때 느껴지는 소외감도 더 이상 감당하기 싫다. 그래서 늘 1대 1의 관계를 더 좋아한다. 아이가 없을 땐 그런 나의 인간관계 스타일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함께 놀 친구들을 원하는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벽이 느껴졌다.     


  아이는 같이 놀 친구들을 원하는데 내가 그 엄마들이 싫어서 피했더니 아이는 주변만 맴돌고 또래와의 놀이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그게 후회가 돼서 둘째를 낳은 후로는 마음을 다잡고, 놀이터로 나간다. 아이는 신나게 논다. 역시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는 그런 류의 엄마를 둔 밝고 사회성 좋은 아이. 그런 아이의 엄마는 여지없이 목소리가 크고, 말도 많고,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사람 많은 곳에서 호탕하게 웃을 줄 안다.    

  

  나는 왜 자존감이 넘치는 엄마가 부담스럽고 불편할까? 집에 와서 곱씹게 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불편해지니 마음의 벽으로 인해서 결국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 엄마는 그런 기질을 타고나 생긴 대로 살고 있는 것뿐이고, 나도 이렇게 태어나 이런 기질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인데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 여자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나는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육아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엄마의 자질이 더 나은가 비교하며 점수 매기며 속으로 자기 비하하기 바빴던 것 같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인데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 놀이터에서조차 엄마의 자질을 놓고 줄 세우기를 하고 있었다. 외향인 엄마라서 아이의 자존감이 저렇게 높을 수 있는 거라며 내향적인 나는 아이에게 저런 기질을 물려주지도 못하고 저렇게 밝지 못해서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만 했다. 저런 엄마도 있고 나 같은 엄마도 있고 저런 아이도 있고 이런 아이도 있는 것이고 모든 아이가 목소리가 우렁차고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 나를 닮아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내 아이가 옆집 아이처럼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과 기대를 갖고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성에 안 차고, 놀이터 엄마들을 상대할 때도 불편해진다. 나와 내 아이만의 장점에 집중하며 아이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편안하게 육아해도 될 텐데, 혼자 비교하며 점수를 매기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과 아이에게 부족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나의 마음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이에게 최고만을 주고 싶은데, 내가 부족한 엄마라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자존감이 낮아 아이에게 잘 대해주지도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남편이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쾌활하셔서 집에는 항상 손님들이 있었어. 두 분과는 다르게 나는 정작 부끄럼이 많은 집돌이잖아. 마음 편한 친구들 몇몇을 빼면 인간관계도 넓지 못해. 너의 논리라면 나는 지금쯤 엄청난 에너지의 외향인에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그런 인간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이래. 그리고 나는 이런 나 자신에게 불만이 없어. 자기가 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시켜주고, 어떤 자질을 물려줄 수 있는가에 골몰하면서 자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인생은 너의 인생이고 아이는 어떻게든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거야. 우리처럼.”      


  남편의 말은 나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인생이다. 자존감이 낮고 내성적인 엄마라 아이를 잘 키우기엔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늘 놀이터에서 나와 반대 성향의 엄마를 보면 질투가 나고,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키웠었나 보다.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 긍정이 안되던 나는 엄마가 되어 이렇게 스스로와 아이를 괴롭히는 생각으로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이에게 좋은 경험, 성공적인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사회성을 키워주려고 노력해도 아이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대로 자랄 것이며, 내향인인 우리 부부가 나름 잘 살아가고 있듯이 아이는 스스로의 힘과 자신만의 장점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라고 내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편안해졌다. 그 순간 이후로 더 이상 아이를 바라볼 때 마음이 예전처럼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결국 늘 그랬듯이 내가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놀이터에서 마음의 벽을 세웠던 것이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동네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인간관계로 힘이 드는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비추는 불편한 내 모습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알아차렸으니, 어딜 가든 불편하고 어색했던 내가 예전보다는 좀 더 편안해질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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