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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5. 2022

자꾸 화내는 엄마


  방송인 김나영이 “육아는 나의 가장 못난 모습을 매일 확인하게 만든다.”라고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말했다고 한다. 수많은 육아서를 보면서 나는 부족한 엄마가 아닐까라고 의심했던 내게 그 말은 위로가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수시로 욱하는 나의 못난 모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안에 늘 고여있는 분노, 우울, 화는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와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평소에는 그런 감정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무언가 약간의 자극이라도 왔을 때, 내가 지치고 피곤할 때 여지없이 들이닥친다. 늘 내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그 부정적인 감정의 원천이 뭔지를 깨닫지 못하고, 혼자 그런 감정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해서 나보다 약한 존재인 아이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난 참 인내심도 부족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기 펭귄이 그림 그리고 있네. 엄마 펭귄이 얘한테 화내겠다.”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한테 왜 화를 내지?”

“내가 그림 그릴 때마다 엄마가 나한테 화내잖아.”

“! ”

큰 애가 5살 때였다. 그림 도구를 여기저기 묻히거나 흘리는 것이 당연한 아이를 두고 나는 화를 내곤 했다. 그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흘린다며 화를 내는 엄마. 이랬다 저랬다 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민한 성향을 지닌 아이를 기질대로 맞춰서 대해주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내 감정에 휩쓸리는 대로 아이를 대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를 방어할 줄 모르고 뺏기고, 맞고,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모습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화가 났다는 표현보다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디를 가든 늘 아웃사이더 같이 겉도는 것만 같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아이에게서 보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인간관계가 늘 어렵고 힘들었던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나서 아이에게 윽박질렀다. 왜 너는 맞고만 있느냐고. 나한테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여리고 작은 아이에게 공감과 응원은커녕, 비난을 하고 아이가 해낼 수 없는 일들을 요구했다.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모습이 마치 아내를 무시하며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비난과 멸시의 말을 퍼붓고, 결국 돈 갖고 갑질을 일삼는 부류의 남편들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상대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 기댈 수밖에 없고, 내게 대꾸할 아무런 힘이 없는 약한 상대. 누군가에게는 그 약점이 사랑과 자애를 베풀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주위 다른 약한 이에게 자신의 오물을 퍼붓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것만 같다. 틈만 나면 감정적 오물을 퍼붓고 다니며 자기 자신과 주위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자신에게 더 크게 돌아오는 오물로 또 고통스러워한다.


  아이가 없을 때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해도 육아하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인 나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대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세심하게 반응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아무리 오물이 들어오더라도 티 나지 않는 바다처럼 부모의 품은 크고 고요해야 한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지금처럼 있는 성질 없는 성질부려가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공부를 하든, 상담을 받든, 무슨 짓이라도 해서 나를 바로 세우고 싶었다. 아이 낳은 사람이 뭐가 무서워서 무슨 짓이든 못할까. 더 이상 아이도 나같이 만들지 말자는 절실함으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서 다시 내 인생을 다잡아야 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이렇게 마주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며, 이렇게 내가 나를 포용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자꾸만 불편하게 하는 내 안의 상처를 보듬고 싶었다.      


  니체는 자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베푼다, 비난한다, 부순다.” 자기표현이란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상대를 비난하고 괴롭히며 무시하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비난하고 부수며 나를 표현할지언정 엄마로서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는 사랑과 응원, 격려, 공감만을 베풀어야만 한다. 이제껏 실수하기 바빴던 나를 용서하고 싫다고만 생각했던 그런 못난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며 아이에게 엄마로서의 나를 잘 표현하고 싶다.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엄마로 아이에게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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