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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Dec 31. 2021

마흔의 채식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보통 채식주의자는 자신의 신념에 가치를 둔다. 환경보호나, 동물의 생명존중과 같은 가치들을 중시하고 삶에서 실천한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존중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나의 비건 라이프의 시작은 그들과는 결이 다르다.  사는대로 생각하던 내가 채식주의자가 될줄이야!


원래 감기, 몸살이 잦았다. 끔찍한 생리통, 변비, 염증성 여드름과 알레르기성 비염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아이 둘을 낳고서 극심한 빈혈과 두통에 시달렸다. 육아할 때는 외출은 물론이고 운동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다 보니 몸은 더욱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몸 여기저기 염증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약발도 듣지 않는 두통이 시작되어 힘든 가운데에도, 만성 발가락 염증, 족저근막염, 질염, 장염, 환절기마다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생리통은 한 달에 한번 약 먹고 참고 버티면 되는 것, 알레르기 비염도 환절기만 넘기면 되는 것, 염증도 약 먹으면 낫는 것이었지만, 이 극심한 두통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상이 고통스러웠고,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다음날까지도 내내 아픈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약도 잘 듣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뇌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둘째가 너무 어려 외출도 어려운 마당에 입원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왜 이지경까지 되었나. 육아하느라 잠을 못 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대충 먹고 운동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나태함 때문일 것이다. 운동엔 관심이 없고 먹는 것도 챙겨 먹는 것이 귀찮아 그냥 대충 때우는 것을 더 좋아했다. 소울푸드는 라테와 빵. 치즈 들어간 음식을 좋아했다. 맛있고 부드러우면 그만이었다.


 결혼 전 살던 곳에 운동하기 아주 좋은 산이 있었지만 10년간 살아도 한 번도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 않았을 만큼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2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서 걷기도 잘하지 않았다. 헬스는 한 달 하고 그만두고 요가 좀 하다가 수영 좀 하다가 그런 식이 었다.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결혼을 하니 육아가 너무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자주 화를 내게 되었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 유난히 힘들어한다고들 했다. 친정어머니께서 도와주셨어도 육아는 힘들고 로운 것이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픈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잘 돌보겠는가. 남편에게 아프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그러다 계획에 없었던 둘째 출산 후 두통이 3년간 지속되더니 갈수록 심해지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병원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내과에서 피검사를 받았다. 빈혈 수치가 심해서 일상생활이 힘들었겠다면서 빈혈약을 하루 2알씩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산부인과에서는 근종의 위치가 좋지가 않고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어서 생리량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둘째 제왕절개 때 자궁 선근증 진단도 받았던 것을 언급하시면서 근종보다 더 심각한 것이 선근증인데, 많은 생리양과 극심한 생리통을 유발하는 증상으로 적출밖에 답이 없다고 다. 원래 근종과 선근증은 아무 증상이 없으면 굳이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질병이다. 순전히 두통 때문에  얘기가 달라져버렸다. 30대 후반에 자궁 적출이라니. 결국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적출 수술이 정답이긴 하나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해서 자궁은 그대로 살려두는 대신 쉽게 말해서 자궁 내막을 모두 긁어내는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수술을 받게 되면 난소의 기능이 저하되는 부작용은 있다고 했다.


 두통은 치료해야겠는데, 이대로 자궁이 기능을 잃어 호르몬상의 이상이 생겨서 몸이 더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됐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살 수는 없는 일. 수술 예약까지 하고 병원을 나섰지만 얼마 후 담당 교수 세미나로 인해서 수술 날짜를 부득이 조정해야겠다는 연락을 받고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냥 취소해달라고 했다. 수술과 회복에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걸릴 텐데 두 어린 아들들을 맡길 곳도 마땅찮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고, 고작 39이라는 나이에 이렇게 큰 수술을 받기가 싫었다. 그러다 동네 도서관에서 닐 바나드 교수의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비만, 불임, 생리통, 당뇨병, 갑상샘 질환, 암 등 각종 호르몬성 질환과 암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녹색잎을 포함한 채소, 곡물, 과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하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고 했다. 살이 빠지고 생리통이 줄고, 당뇨, 고혈압 같은 질병도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암환자도 이런 식단을 유지함으로써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동물성 식품이 좋지 못한 이유는 식이섬유가 하나도 없는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계의 식품 생산방식에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각종 호르몬제와 항생제를 투여한 동물성 식품이 우리 몸에 들어가서 체내의 호르몬 분포를 변화시켜놓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책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러시>, <자본주의 밥상>을 보고 더 확실하게 공장식 축산업계와 오염된 식품업계의 실상을 보고서 마음을 먹었다. 알게 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렇게 알았다고 해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나는 잃을 게 없는 사람. 두통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었고 너무나도 절실했으므로 당장 실천해보기로 결단을 내리고 현미밥, 채소, 과일만을 먹는 비건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달걀, 유제품, 해산물까지 제한하는 엄격한 식단이다.


 닐 바나드 교수의 말이 맞았다. 식단은 처음엔 힘들지만 그 보상은 정말 확실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두통이 그냥 사라졌다. 이틀에 한 번꼴로 나타나 일상을 파괴하던 두통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없어지다니! 너무 신기했다. 생리통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100퍼센트의 통증이었다면 40퍼센트의 통증으로 줄었다. 확실히 식단은 효과가 있었다. 3,4일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며 힘겨웠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한 번 시원하게 화장실을 다녀온다. 식단만으로 인생이 이렇게 날아갈 것같이 가벼워져서 행복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몸이 힘들고 아프다면,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성급히 수술을 받을 일이 아니라 식단부터 한번 바꿔볼 일이라고. 더 먹던 것을 조금만 줄이고, 덜어내면 될 일이라고 말이다. 말 그대로 맛있게 먹던 음식을 딱 끊고 아무렇지도 않게 채소만을 먹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낯선 체험이긴 하다. 그래도 더 이상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고,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단지 먹던 것을 안 먹는 것만으로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젠 내 나이 마흔.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줄 때다. 이제껏 나는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정말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다. 아프고 채식을 하고 난 후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내 몸과 마음이 하는 말에 응답하는 것. 마흔이 되면  진짜 나를 사랑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이다.  채식의 가치를 멈춰서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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