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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5. 2022

나만의 코인 적립하기


  외향인과 내향인의 특징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향인은 아침에 일어나면 코인을 10개를 가지고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코인이 0개가 된다고 한다. 반면 외향인은 아침에 코인 하나 없이 일어나도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10개의 코인이 쌓인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노는 게 버겁고 힘든 내향인들은 자신이 가진 코인을 하나씩 소진하다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코인을 충전할 수 있다. 반면 외향인들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코인을 적립해나갈 수 있으므로 집에 혼자 있기보다는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코인을 적립해 나간다.      


  최근에 6개월의 육아 휴직 후 다시 복직한 친구를 만났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 도망가다시피 직장으로 돌아간 그녀는 요즘 최고 인생의 낙이 퇴근 후 맥주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무슨 맥주를 마실까 생각하는 것부터 설레고 맥주 없는 하루 일과는 상상조차 못 하겠다.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지.” 못 마시면 큰일이 나는 친구를 보며 이렇게 맥주에 진심인 줄 몰랐다고 하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너는 요즘 낙이 뭐냐고 묻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만큼 확실한 인생의 낙이 없었다. 독서를 하긴 하지만 진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욱하는 날에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 잊으려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스트레스를 날려주지는 않는다. 운동을 하면 분명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긴 하지만 운동하러 가기까지 마음먹고 준비하는 것이 오래 걸린다. 과연 나만의 진짜 코인 적립 필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트레스받으면 무조건 이걸 한다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으면 더 좋고. 그래서 한도 끝도 없이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던 어느 달에 나만의 코인 적립 필살기를 찾기 위해 혼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았다.      


  어느 날 손흥민 골 득점 장면을 보면서 러닝머신을 걸었더니 평소 운동할 때보다 아주 활기차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손흥민은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하며 경기를 뛰어도 어떻게 그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양발을 이용한 시원한 슛과 이어지는 귀여운 세리머니를 보고 있자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같이 기분이 밝아졌다. 운동선수가 경기를 뛰는 것을 보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 해소가 될 일인가 싶었다. 친구와 수다 떨며 수변공원을 도는 것도 좋았다. 눈으로는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오리들과 파란 하늘, 푸른 숲을 담고 귀와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부지런히 걷다 보면 닫혀있던 땀구멍이 뚫리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아이들 보내고 오전 일찍 노트북을 갖고 카페로 가서 차 한 잔 하면서 글을 써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크고 시설 좋은 시립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들을 실컷 읽고 글을 써도 행복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도 잘 되었다. 시끄러운 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청소를 해도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을 느꼈다.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바꿔놨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록 음악은 하기 싫은 청소를 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20대 이후로는 시끄러운 음악을 잘 안 들었는데 마흔의 락 스피릿은 일상의 활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영장에 다녀와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 시간 동안 물속을 허우적대다 씻고 집에 돌아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아직도 난 육아 퇴근 후 무조건 맥주를 마시는 친구처럼 나만의 필살기를 확실하게 만들진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몸을 움직이면 맺힌 게 뚫리고 가라앉았던 기분은 나아지며 코인이 적립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카페 가서 글쓰기, 청소하기, 운동하기, 수변공원 친구와 걷기, 도서관 가기 등등 코인을 평소 많이 적립해두면 다른 데서 부딪히고 깨져도 그 코인들로 인해서 금방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달랠 수 있는 일을 될수록 많이 만들어 두면 여기저기 쌓아두었던 코인들을 하나씩 써가면서 많은 다른 일들을 해낼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었다. 내 코인 적립 법들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인 동시에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몸도 건강해지고 집도 깨끗해지고, 마음도 충만해지는 방법들.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코인 적립 법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나만의 코인 적립 법은 내 삶의 톱니바퀴를 기름지게 만들어 더 잘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른 톱니바퀴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좋고 가끔 소리 나도 괜찮으니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기름칠로 오랫동안 굴러가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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