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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5. 2022

엄마들의 글쓰기 수업

     

  큰애 6살 때, 남편은 일 때문에 집을 떠나 멀리 있었다. 야심 차게 도전했던 공무원 시험도 몸이 아파 그만두었고,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 그리고 더 이상 내 인생은 빛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한 블로그에서 엄마들의 글쓰기 수업에 대한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살던 곳에서 꽤 먼 곳에서 수업이 진행됐는데, 아이를 원에 보내고 그냥 달려갔다. 그것도 제일 더운 7, 8월에. 무엇에 이끌렸는지,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그리고 포기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말을 잃었던 내가 마음속 들끓는 말들을 쏟아내고픈 본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본 수업 공고를 보고 다짜고짜 전화해 수업이 한차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참여 의사를 밝히고 달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받아들여짐을 경험했다. 아무것도 아니고, 실패하고, 아프고, 절망적이지만 힘들었겠다며 나도 그랬다며 같이 울고 웃는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선생님도 아기 엄마였고, 한 명을 제외한 구성원들이 모두 엄마였다. 모두들 독서를 참 오랫동안 많이 해온 사람들 같았다. 조금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내 속에 그동안 고여있었던 누구에게도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써 쏟아내고 나니,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편안해졌다. 처음 쓰는 형편없는 글이었건만 그들의 응원과 격려, 공감으로 매주 다시 또 써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글을 잘 쓰기를 바란다면 빨간펜으로 맞춤법 틀린 것이나 내용에 관련된 어떤 지적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저 넌 정말 글을 잘 쓰는 것 같다며 칭찬하고 공감해주면서 다음엔 더 자세히 써보자고 응원과 격려의 말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은 참여자들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어려서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관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분은 충분히 내 부족한 글에서 고칠 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등과 같은 점이 보였을 텐데도, 내 글의 좋은 점, 그 글을 쓰게 된 내 마음과 상황, 처지에 대한 공감과 응원만을 해주셨다. 주어진 주제에 맞춰 글을 써서 발표하고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계속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처음 접하는 글쓰기 수업이 맞춤법 첨삭과 글의 구조, 문장력에 중점을 둔 수업이었다면 나는 아마 글쓰기를 지금까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놀라웠던 점은 내가 펑펑 울면서 글을 쓰고 수업시간에 여러 번 울컥하며 낭독을 하면서, 내 안에 오래도록 똬리 틀고 있었던 응어리가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혼자서 끙끙 앓던 내 안의 슬픔이 옅어졌다. 쓰면서 시원했다. 어디 가서도 하지 못했던 말, 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벽을 쌓고 외롭게 지내며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고백,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던 욕심, 아이만큼은 나를 닮지 않고 강했으면 했던 마음, 안정적인 정규직에 대한 열망, 매번 뜻은 세우지만 매번 실패하고 마는 괴로운 인생, 구질구질한 일상, 변변찮은 인간관계에 대한 말들을 풀어내면서 시원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맞다고 말해주는 이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내 글과 내 마음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족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왜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느낌에 시달려왔는지, 연기하는 것같이 살면서 불편하고 힘들었는지 모르겠을 정도였다. 이 수업을 하기 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엄마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가질 수 있는 공감대와 더불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편안한 느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내 안의 분노와 절망을 다스릴 수 있는 최고의 도구를 발견한 것 같았다. 드디어 사람 관계가 힘든 내가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찾은 것 같았다.     


  한 번 써보니 나도 못 쓸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브런치에 글도 연재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 일상의 커다란 부분이 된 글쓰기는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고,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더 읽게 되고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하게 된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는 선순환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방황도 잦아들고, 혼자 있어도 더 이상 난감해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조용히 읽고 쓰면서 침잠해 들어갈수록 애매하고, 슬펐던 나를 마주하고 마침내 털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 있는 엄마들을 나는 어디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게 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준 그때의 소중한 시간들은 엄마로서의 내 인생에 하나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나의 절망과 슬픔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어디에선가 부지런히 책을 읽고, 필사하며, 글을 쓰고 있을 그때 그 학우 엄마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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