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체육관 공사업체 사람들이 두꺼운 점퍼 깃을 세우고 학교로 들어섰다.
하자보수 때문이라지만, 정작 문제라고 했던
2층 보일러에서는 더 이상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마치 어제까지 울부짖던 무언가가
오늘은 갑자기 마음을 다해 잠잠해진 것처럼.
그들은 바닥을 살피고, 벽을 두드리고, 한참을 둘러보다가
“좀 더 지켜보죠”라는 말을 남겼다.
어쩐지 그 말이
우리의 하루를 대신 요약해주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늘, 바로 눈앞에서 해결되지 않고
잠시 숨어든 뒤 다른 날의 어깨 위에서 다시 나타나는 법이었다.
닫아두었던 화장실도 조용히 문을 열었다.
사람이 오가는 소리가 다시 학교에 스며들었다.
돌아온 내 책상 위에는
예산요구서가 겨울 두꺼운 코트처럼 쌓여 있었다.
종이의 흰 결 사이로 숫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는 듯했다.
두 부서는 이미 성실히 제출을 마쳤고
나는 텅 빈 형광등 아래에서
그들의 서류와 마주앉아 기안을 작성했다.
책상 위로 스쳐가는 종이 냄새,
키보드 위를 누르는 손끝,
그 소리까지도 오늘은 왠지 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시에서 걸려온 전화.
개방지원사업 현황자료의 ‘사용 허가 시간’이
신청서와 다르다는 말.
나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류 한 장의 문구에 의해
학교의 주말이, 아이들 없는 공간이,
그 침묵마저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한숨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순히 주중의 15시간만 지키면 된다고
순진하게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서류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서류는 ‘의무’를 말한다.
주말 사용으로 신청했고,
그 덕분에 가점을 받았다는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2027년 2월까지’라는 날짜가
머리 깊숙이 박혔다.
이 겨울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가 낯선 발자국들로 채워지는 것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으신다.
나는 조심스레 보고를 드렸다.
말을 전하는 동안
내 마음엔 작은 균열 같은 것이 일었다.
하지만 “개방하지 않으면 반납해야 한다”는
차갑고 분명한 문장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개방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해가 지고,
학교 건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던 시간.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무겁게 쌓인 일들이
어디에도 흘러가 주지 않아
마음 한켠에 고여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또 문을 열고
서류들을 마주할 것이다.
이 학교와, 이 자리와, 이 책임이
나를 다시 부를 테니까.
그리고 나는
늘 그러듯 묵묵히 대답하게 될 것이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