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인정했다

남들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의 인생을 뒤바뀌어놓은 이야기

by 세담

어렸을 때는 그냥 나도 남들처럼, 똑같은 삶을 사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좋은 대학에 가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상상 말이다.


그냥 남들이 정해준 대로, 또는 이미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반짝반짝 잘 닦아놓은 그 길을 나는 그저 하염없이 쫓아가면 내 인생은 성공 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어린 마음에 매번 가짜 동그라미를 색칠하며 선생님께 다했다고 거짓말했던 피아노 수업, 큰마음 먹고 샀던 기타는 집 한구석에 짐이 되어 놓여 먼지만 쌓이고 있으며, 학교 체육 시간이면 피구, 농구, 이런 지루한 것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스스로 할 것들을 찾아서 선생님이 시킨 것 말고 몰래 친구들과 배드민턴이나 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실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렇지만 당시 내가 관심 있고 그나마 잘하는 과목은 영어 하나뿐이었다. 아마 중학교 때는 영어 성적이 제일 잘 나왔기에 영어만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야 다른 과목의 부진한 성적을 메꿀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영어 문법과 본문만 달달 외우면서 매달렸고, 결국 영어 성적은 모두 A+를 받고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 성적을 들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외국어고등학교를 무모하게 지원했던 나는 외고에서 공부를 잘하는 내 친구들 덕분에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포기하기는 싫어서 밤을 새워가면서, 나를 채찍질하면서 공부했다.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가 차로 50분 거리에 있었는데, 셔틀버스를 태워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우리 엄마는 코로나가 터졌던 2020년, 2021년의 반을 제외한 나머지 학기에 모두 나를 직접 차로 학교까지 태워다주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나를 데리러 와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늘 그렇게 고생해 주던 우리 엄마는 나에게 " 그래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서 너랑 드라이브 할 수 있어서, 저녁 메뉴를 같이 고를 수 있어서 좋다"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런 엄마의 관심 사이에서 나는 다행히 남들이 이름을 들어보면 모두 알고 있는 이름있는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일어났다.

고등학교 때는 단 하나의 목표, " 서울권 4년제"를 바라보고 고삐에 단단히 묶인 경주마처럼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면 대학교에서는 마치 고삐가 풀린 경주마가 자유를 찾아 도망친 후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는 그런 상태에 놓이고 만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그냥 대학만 가면 다 잘될 줄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대학이 정말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대학은 나에게 정말 낯선 곳이었다.


대학교에 가니 내가 무엇을 하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져야만 했다.

당연히 공부에 대한 강박이 아직은 남아 있어 전공 공부는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상상과 달리 대학교는 너무 재미가 없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셔도 내 소중한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재미가 없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들과 어색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것도

너무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즐겁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강제로 술을 마시며 그 자리에 앉아 "언제 집에 가지"라는 생각만 수십 번을 하며 그 자리에 간 것을 후회했다.


이런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대학교에서 부적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내 괴로워하며 통학하던 새내기 시절에는 저녁에 돌아가 엄마와 술 한 잔을 마시며 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 엄마는 그냥 낯선 환경에 모든 게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면서 나를 다독였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학과에서 주최하는 언어 교환 프로그램이 눈이 들어왔다.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와 4명 정도 조를 이루어 언어 교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같이 친했던 동기 언니에게 함께 신청하자고 언니를 졸랐다.


그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굳이 왜 그걸 하려고 해?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재미있어 보였다.

수시 전형, 그것도 면접 전형 즉 대학에서 내 생활기록부를 보고 그걸 바탕으로 뽑아주는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수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그런 교내 활동이나 다양한 대외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재미있어 보여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나마 엄마가 시켜준 영어유치원, 영어 독서 학원, 영어 토론 학원, 주니어 토플 준비 학원 등 어마어마한 조기 교육으로 인해서 영어는 다른 과목보다 나았다. 그렇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를 한국에서 보낸 나에게는 그 한국식 영어 주입 교육 덕분에 그 잘하고 좋아하던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그 감을 다 잃었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영어 원서 한 권도 스스로 읽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외국인과의 언어 교환 프로그램이라니


사실 좀 두렵긴 했었다.

외국인 앞에서 영어 문법을 틀리게 말하면 어떡하지?

걔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온갖 별 상상을 다 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날에는 신호등 건너 학교 건물 앞에 서 있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 긴장해 3시까지이던 약속 시간에 이르게 도착했음에도 그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거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부터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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