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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Apr 12. 2022

고백

요즘 푹 빠진 드라마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짝사랑을 다룬 드라마.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음악들이 가득한 드라마. 내 마음이 한 번 보고 지나가버리는 게 아닌, 보면 볼수록 빠지게 돼 버려서 어쩔 수 없는 드라마. 끝나가는 러닝타임이 어느 때보다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러닝타임이 짧기도 한데, 그 시간만 짧은 게 아니라 드라마 자체도 4부작으로 짧다. 아무래도 곱씹을수록 의도가 다분하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짝사랑의 마음이 어떤 건지 느끼게 해 주려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고, 떠나보낼 준비는커녕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너는 끝이라고 말한다.


드라마뿐 아니라 우리의 사랑에서도 그렇다. 시작되지 않은 사랑만이 짝사랑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랑에서도 어느 한쪽의 사랑이 먼저 끝난다면 남은 한쪽은 짝사랑이 된다. 둘 중 어떤 짝사랑이 더 아플까 고민해 봤는데 내가 생각했을 땐 후자다. 전자는 내가 자주 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즐기게 됐기도 하고, 즐기다 보니 짝사랑이라는 이 단어에도 애정이 생겼다. 흔히들 이 단어를 슬프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던데, 나는 어딘가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랄까.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주변을 보니 그렇다. 나이답게 어른스러운 이별이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남겨진 사람은 그 자리에 꽤 오랜 시간 머무는 것 같다. 어린아이 때부터 느꼈지만 줬다 뺐는 것은 참 나쁘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몰랐을 감정을, 가진 적이 없다면 아깝지도 않았을 그런 것들이 붙잡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안될 걸 알면서도 깨끗이 잊지 못하는 마음을 ‘미련’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조금 지저분하더라도 그것을 사랑, 그중에서도 짝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주면 받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 그러니 혼자 하더라도 그 사랑은 온전한 것이다.


사랑도 끝나고 드라마도 끝난다. 앞서 말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작사가인 여자 주인공의 작사를 위해 2주 동안 같이 지내게 된다. 하필 2주. 드라마답게 남자가 해외로 떠나야 하는 타임 리밋이 있기도 했지만 아마 분명한 마음의 계기는 이 2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19년을 알고 지냈고, 그중 8년은 남자 주인공에게 짝사랑의 시간이었다. 그 긴 날들 속에서 하필 2주다. 사랑에 빠지는 건 찰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드라마 속의 2주는 그 사랑을 확인하고 다짐하고 또 표현하는 용기의 시간이라 받아들여졌다.


말로 하기엔 말 주변이 없고 글로 쓰자니 글씨는 더 엉망이다. 외국인도 아닌데 무슨 말로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서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드려 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용기 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정해보려고 합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다짐하고 또 용기 낼 수 있는 시간. 우리 2주 뒤에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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