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해 두었던 글입니다. 현재는 결혼 10년 만에 낳은 6살 딸아이를 양육 중입니다)
요즘 나의 일상은 '권태기'다.
권태기의 사전적 정의는 '부부가 결혼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권태를 느끼는 시기'라고 설명돼 있는데, 권태로움/권태기는 비단 연애와 결혼/ 남녀 간의 감정적인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태로움이라는 것은 '무료하다'는 단어와 동의어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요즘 내가 느끼는 무료함은 단순히 심심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재미없다'를 넘어선 것 같다. 뭘 해도 재미없고 뭘 할까 하는 의욕조차 생기지 않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내 삶의 질이 굉장히 저질회되었다고 생각한다. 출퇴근 시간이 한계치를 넘었으니까, 자존감 확 떨어뜨리는 노동을 하고 앉았으니까, 그냥 나는 지금 만사 귀찮고 짜증 나니까라는 자기 방어적인 핑계를 내세우며 스스로 나락의 길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심리적 방황 속에서, 결혼 생활의 권태로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 7년 차,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
그래서 우리같이 신혼을 넘겼음에도 아기가 없는 부부들에게 권태기는 더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삶 자체에 무료하다고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삶이 너무 편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림에, 육아에 지쳐 권태로움을 못 느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다른 부부와는 달리 오로지 퇴근 후 일상에서는 둘만을 바라보다 보니 권태롭다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주말 낮,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 신랑에게 '언어폭행'을 당했다. 폭행이라는 것이 육두문자를 쓴다거나,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린 그런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간 너무나 서럽고 속상하고 뭐라 대꾸해야 할지 생각조차 안 나는 '심장폭행'을 당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싸움으로 번졌겠지만 이제는 그걸 안다. 우리 부부에게 싸움은 순간 화르르 타고마는 '폭죽'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싸우고 십 분도 되지 않아 또 헤헤거릴걸 알기에 이제는 순간의 화를 한 템포 쉬고 넘기자는 우리 부부만의 '위기 극복법'을 이제는 안다.
넌 지금 나의 심장을 폭행했지만 오늘은, 이 순간은 참자! 그러고 그냥 아무 일 없는 듯 잠자리에 들었다. 신랑은 어느새 코를 골기 시작했고, 난 신랑 코 고는 장단에 맞춰 곱씹기 시작한다.
'넌 나에게 오늘 또 한 번 잘못을 저질렀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부글부글 심장 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한 나이지만 그간 쌓아온 내공 덕인지 밤잠 설치는 정도로 털어내 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근 전, 아침도 함께 먹고 웃으며 잘 다녀오란 인사도 건넸다.
그런데, 월요일 다시 문제가 터졌다. 평소 심하게 덜렁거리고, 숫자나 셈에 약하고, 서류와 문서 따위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 내가 완전 반대인 성격인 신랑이 보기엔 정말 바보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왔기에 신랑의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건을 만들어 버렸다. 나의 심리상태가 온전했다면 평소대로 "역시 꼼꼼한 남편을 만나서 참 다행이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고마운 남편(하트)"라고 생각했고 애교로 넘겼겠지만 가뜩이나 심리 상태도 올바르지 못한 나는, 내가 이렇게 바보 같나란 자책이 더해져 신랑의 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정작 당한 사람은 난데, 왜 나한테 이렇게 화를 내는 거지?
"어쩌다 넌 내 보호자가 된 거야? 네가 왜! 내 보호자가 된 건데! 내 나이 서른다섯에 그깟 것도 내가 모를까 봐? 넌 지금 내가 이런 일을 겪어 속상한 게 안 보이는 거야? 왜 네가 뭔데, 나에게 화를 내는 건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괴성을 내면서도 끓어오르는 분노는 도무지 삭이질 못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냉정모드로 돌아섰다. 결혼 7년 만에 퇴근 후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안방으로 신랑은 거실에서 각 자의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서로 잠이 들어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추운 데 어딜 거실에서 자! 들어와, 침대로!"라며 못 이기는 척 신랑을 끌어 왔을 나였고, "여보~ 추워요. 같이 자요~"라며 애교를 떨었을 신랑일 테지만, 그런 것도 없이 서로 잠만 잘 자고 일어났다. 대화는 없었지만 신랑은 언제나처럼 다가와 거실에서 자다 추워 죽을 뻔했다며 백허그를 했다.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려 그러든지 말든지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눈치 빠른 신랑은 슬슬 내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출근길에 기분을 상하게 만들까 억지로 말을 받아주려던 찰나, 내가 다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어제 사건의 발단을 또 되새김질하는 신랑. "그만 좀 하라고~! 제발 그만하라고!"라고 소리를 빽 지르니 그제야 그만두는 신랑. 결국 나는 한 고비, 또 한고비를 넘긴 서러움을 기어이 내뱉고야 말았다. 터져 나올듯한 울음을 겨우 삼키며, 출근을 한다. 터질듯한 울음을 삼키려 핸드폰으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뉴스들을 읽어본다. 유명 여가수의 이혼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혼사유는 "성격차이". 그 기사 밑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결혼 전엔 성격을 모르나?', '뻑하면 성격차이라지.', '한평생을 따로 살던 남녀가 결혼했는데 당연히 성격이 차이는 게 맞는 거 아냐?'. 그들에겐 성격차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속 사정이 있을 거다. 부부가 살다가 느끼는 가치관의 차이, 생각의 차이, 표현 방식의 차이, 자라온 환경 등을 아우러 그저 '성격차이'라고 발표했을 거다. 예전엔 나도 '무슨 성격차이?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성격차이'라는 이유가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