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엔 늘 고비가 있다.

by 혜란

(이 글은 9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해 두었던 글입니다. 현재는 결혼 10년 만에 낳은 6살 딸아이를 양육 중입니다)


얼마 전 내가 쓴 블로그 글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뜨면서 '30대/여자/직장인'이라는 제목에 내 블로그로 유입되어 들어온 '기혼 여성'분들께 우리 부부의 치부 아닌 치부가 들통나고야 말았다. 글 같이 않은 그 글에 위로를 받았다는 분, 결혼해 보니 알겠다는 분, 나에게 쪽지로 또 메일로 부부 문제를 물어보신 분들의 사연을 접하니 우리 부부가 굉장히 이상하거나 변태적인 부부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이혼이냐, 참고 그냥 사느냐' 고민하는 분들께 심심한 위로 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 한 구절과도 같은 미약한 위로로 이 포스팅을 올려본다.


우리 부부는,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약 9개월을 만났다. 흔히 말하는 1년 4계절을 채 함께해보지도 못한 채 급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전까지 약 7년, 3년 정도 긴 연애를 했었기에 연애 기간과 결혼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남편은 그냥 결혼이 정말 하고 싶던 그때 나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의 겉모습에 끌렸고 겉으로 대충 보이는 성격과 가치관, 생활 습관, 돈에 대한 개념 정도의 얕음 정도만 파악한 채 우린 급하게 결혼을 했다.


대체적으로 성격이 잘 맞고, 먹을 때는 이렇게 합이 잘 맞는 천생연분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각자 서로의 성격이 드세고 예민하다. 어쩌면 7년째 사는 이유는 서로 나 자신의 성격이 보통이 아님을 알기에 꾸역꾸역 잘 버텨온 거라 말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이혼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어려번 했고, 아마 우리 남편도 그러했을 거다. 연애 때야 맘에 들지 않고 가치관이 다르고 바라보는 이상향이 다르다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결혼한 부부 다르다. 장기 연애를 했다 치더라도 같이 살 때는 모르던 개인의 문제점은 대충 결혼 2년 차 때까지 매일 뜨악의 연속이다. 그래서 결혼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쉽게 이혼하는 부부도 많고 우리도 여러 번의 고비가 참 많았다.


그리고 3년, 6년... 흔히 말하는 3.6.9.12년 차의 주기로 권태기라는 놈이 찾아오기도 한다. 일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가 없어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여 서로만 바라보다 보니 때로는 삶이 지쳐버릴 때 나 혼자만의 감정들로도 컨트롤되지 않는 부담스러운 시기도 찾아온다. 특히 나처럼, 태생적으로 결혼이 맞지 않는 '아내'에겐 말이다. 신랑 말에 의하면, 난 정말 '이기적인 계집애'이기 때문에 내 삶의 권태기가 오는 시기가 되면 신랑이 되었건 그 누구가 되었던 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들어가 단절하고는 한다.


앞전 문단에 쓴 서로의 성격이 보통이 아님을 알면서도 결혼 7년 차까지 꾸역꾸역 버텨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서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우리는 이미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한쪽 누군가가 '성깔'을 부리면 '지금 이 모습이 내가 저 사람에게 성깔 부리는 나의 모습이겠지'하며 서로 반성의 거울이 되어 우리는 버티는 것이라고 말한다.


6년 차 끝 무렵인 3개월 전쯤, 또다시 권태기가 찾아왔었다. 내가 왜 이렇게 희생만 하며 맞지도 않는 결혼이라는 걸 유지해야 하는지, 과연 내가 결혼제도와 잘 맞는 여자인 건지, 결혼으로 내 삶이 흐트러진 건 아닌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에 사로잡힌 내가 있었고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이 있었다. 7년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생활 방식에 내가 용납을 못했고 그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으며 그 모든 것을 접어버리고 떠나고만 싶었다.


그렇게 극에 달한 어느 날, 정말 심각하게 고민할 때마다 했던 나만의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이 남자와 살아 행복한 점/불행한 점, 이 남자와 살아 행복했던 일/불행했던 일, 이 남자와 결혼을 유지해서 이로운 점/해로운 점 이런 양면의 상황을 비교해 가며 나열해 보았다. 서너 시간이 훌쩍 흘렀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적어 나아가봤다. 결국, 행복한 점이 많았고 행복했던 기억이 많았고 결혼 유지로 이로운 점이 많았다.


그 이후에도, 내게 결혼과 이혼을 물어오는 후배들에겐 내가 자주 행했던 객관화리스트 작성을 알려준다. 비록 법적으로 묶인 사이라 해도 불행하고 아픈 기억이 많고 앞으로의 미래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과감히 이혼하라. 그렇지만, 또 하나 묵과할 수 없는 건 부부 사이에는 늘 고비가 있으며 그 고비의 정점만 찍으면 감정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꼭 말해준다. 7년 차인 우리가 2년 전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운 이유를 우리 둘 다 모르듯이 부부싸움의 원인, 감정 골의 이유는 순간의 고비만 넘기면 그렇게 사라진다.


불과 3~4개월 전 내 삶을 리셋하고 싶은 충동과 이 남자와 사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던 시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때 썼던 객관화리스트에 적혀 있는 이 남자의 수많은 장점이 새록 감사하게 느껴지며, 한 고비를 넘겨 다시 사랑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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