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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님 Apr 16. 2023

엄마 아빠랑 놀아주기 힘들다

1. 참 재밌었다

2023/04/14 금요일

금요일 저녁 부모님이 오셨다. 한 2주 만의 방문이었다.

엄마는 고속도로 위에서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2주의 텀이 지나면 꼭 덜 챙겨간 짐을 핑계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셨다. 


그럴 때면 나는 '필요 없는데'라고 툴툴거리면서 주말 스케줄을 비웠다. 내가 또 보고 싶은가 봐라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원래 가지고 오기로 한 짐보다 두 배로 바리바리 싸들고, 딸 퇴근시간인 5시에 맞추어 도착했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나는 음식 조리 준비를 해두고 맞춰서 끓이기 시작했고, 아빠의 의견대로 평소 내가 먹던 식단으로 간단한 3인분의 저녁을 준비했다. 

평소에 가족 단톡방에 각자의 저녁식사 사진을 올릴 때면 아빠가 늘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커다란 짐덩이부터 보였다. 선풍기만 가져다 주기로 해놓고는(사서 쓴다고 했는데도) 커다란 짐덩이에 가려진 부모님 탓에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빵 터지고 말았다.

 

목록은 다양했다. 다진 마늘, 직접 끓인 도가니탕, 내가 잘 먹던 두부 봐자, 새로 나왔는데 엄청 맛있었던 과자, 생필품 몇 가지, 선풍기, 놓고 간 만년필 잉크, 빨래바구니, 집에서 쓰다가 놓고 간 잡다한 물건 12345...

"선풍기만 갖다 준다매."

경상도말로 툴툴 걸리면서도 웃겨서 입술사이로 웃음이 비식비식 비집고 나왔다. 툴툴거리기만 하는데도 나를 보자마자 "아이고 우리 딸" 하면서 끌어안는 부모님을 보니 직장에서 있었던 일은 다 아무래도 좋아졌다.


내가 차린 간단한 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진짜 별거 아니었는데.

"와 사 먹는 파스타보다 낫다. 진짜로."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와 같이 비한식파인 아빠는 내가 아주 가끔 하는 '조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이게 그 양배추수프 그런기가? 삼삼하고 갠찮네."

엄마는 한식파답게 국물요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부모님은 부산했다. 아빠는 설거지를 하고, 엄마는 퇴근 후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나의 집을 돌봤다. 혼자 사는 준프로 자취러에서 멀뚱멀뚱 앉아있는 7살이 된 기분으로 엄마 아빠를 바라봤다.



이후 코스는 산책이었다.

집 근처에 꽤 큰 공원이 있기 때문에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나도 가보지 않은 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퇴근 후 외출 같은 건 원래 꿈도 꾸기 힘든 나이지만 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부모님까지 좁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구름이 잔뜩 껴서 흐린 저녁이었지만, 길어지기 시작한 해는 충분히 밝았고 

길을 잘못 들어 들어간 절 구경도 충분히 재밌었다. 3명에서 하는 대화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산책로 길에서 아빠 뒤를 걷다가 찍은 공포영화 포스터 같은 사진도 웃음을 자아냈다.


문제의 그 사진





집으로 돌아와서 차례대로 샤워를 하고 엄마에게 '공주잠옷' 중 하나를 건네었더니 특유의 소녀 같은 목소리로 '어머어머'를 연신 외쳤다. 

변명을 하자면 시중에 잠옷 원피스라고 치면 우리 엄마 피셜 '공주잠옷'같은 것만 잔뜩 뜬다. 개중에 가장 프릴이 적고, 소재가 좋고 편한 라인으로만 주문을 했는데도 우리 엄마가 보기엔 충분히 '공주'같았나 보다.


저번 방문 때 겨울용 잠옷 원피스를 엄마랑 커플로 입었는데 너무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번엔 비교적 얇은 잠옷으로 준비했다. 예쁜 잠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다. 그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딸과 같은 걸 입는다는 것은 더 나은 만족감을 안겨주는 듯했다. 


아빠가 "내 거는?" 하시자 엄마가 걸려있는 잠옷 원피스 중 하나를 건네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났더니 모든 걸 다해도 8시가 채 되지 않았고, 

먼 거리를 오신 부모님도 당직 출근했던 나도 피곤함에 눈을 비비면서 자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꼭 더 놀고 싶은 어린이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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