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가성비가 좋다는 글을 봤다.
농담이 반이겠지 싶었지만 사실 나도 1년에 한 번쯤 평화로울 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단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고, 꼬박꼬박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어떨 땐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겹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다녀올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좋든 싫든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사회성도 잃지 않게 해 주고, 월급도 준다.
단, 여기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먼저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것. 말 그대로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적정선의 워라밸을 지키고,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월급을 받고, 가끔씩 보람도 느끼고,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원만한 인간관계가 있는 직장은 거의 유토피아이다. 이런데가 있다면 월급이 줄어든다 해도 가고 싶을 정도로. 그중 인간관계 스트레스만 줄어도 직장은 다닐만하다.
다음으로 업무강도이다. 다양한 형태의 직장이 있지만 보통 직장을 다니며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쉰다'라고 하면 9-6시를 떠올린다. 그런데 우선 9시까지 출근하려면 적어도 7시엔 일어나서 사람형태를 갖춰야 하고, 이동해야 하며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이므로 7-7시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 쓰는 시간도 아깝고 짜증 날 뿐인데, 업무강도 또한 여유롭지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 4일제 아니면 10시 출근 4시 퇴근이 맞는 것 같은데...
사실 사람들은 크게 많은걸 바라지 않는다. 업무시간 내에 그냥저냥 일을 쳐낼정도만 되어도, 고작 하루 쓰는 연차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고, 출퇴근 시간이 지켜지고, 업무 외 회식이 없고...
말 그대로 일할 땐 일하고 집에만 잘 보내줘도 적당히 만족하며 다닌다.
아, 말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한 달 중 가장 기쁜 날인 오늘은 월급날이다. 나도 월급날 '만'보고 일하러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 중 그 무엇보다 기쁜 날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월급날엔 왠지 조금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월급값을 해야지 하는 기분은 이날만 느끼는 것이다. 그 외엔... 음... 꼬박꼬박 나와서 사람구실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월급은 돈이 생겨서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기쁘지만, 뭔가 '귀하가 한 달간 뒤지게 고생한 노동력입니다.'라는 느낌으로 받는 거라 그래, 이거 받으려고 참았다! 하는 날이다.
일을 하느라, 뭔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느라, 싫은 사람을 견디느라 애쓴 값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탕진하기가 아까워진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이달의 00을 정해서 연말정산을 해보라고 했는데, 그중 '이달의 소비'가 있었다. 기껏 고생해서 돈 번을 아깝지 않게 사용하며, 한 달 중 가장 잘 쓴 돈에게 이름까지 붙여둔다면 내 작고 소중한 월급이 공중분해가 되는 느낌은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 따라 해보기로 했다. 마침 가계부도 쓰고 있으니 잘된 셈이다.
이달의 소비는 무엇이 될까.
일단 월급을 받고 주거비용과 공과금, 적금을 낸 뒤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남느냐고 먼저 물어야 하지 않겠냐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오늘은 기쁜 날이다.
HAPPY 월급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