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믜-새옹지마

by 페니킴

어제까지는 폭우가 미친듯이 쏟아지더니 오늘은 햇빛이 쨍하다. 태양의 강렬함이 내 여리디 여린 피부를 때린다. 대기 중 아직 사라지지 않은 습기가 열기를 가득 머금은 채 몸 속으로 파고든다. 맑고 건조한 날씨보다 습한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지는 이유인가 싶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젖어버린 대지를 말려주리라. 일기예보에서도 오늘부터는 다시 푹푹찌는 무더위가 온다하였다. 덥지만 맑은 날을 예상하며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아이의 하교시간에 아이를 만나 차에 올라탔다. 오후에 출근하는 나의 일정상 보통은 하교시간에 데리러 갈 수 없지만 오늘은 병원에 가야했다. 아이는 온몸을 후벼파는 습도와 열기에 교문 앞까지 나오는 짧은 순간에도 땀을 비오듯 흘렸다. "에어컨!" 아이는 절박하게 소리쳤다. 종종 걸음으로 차에 올라타 에어컨을 쐬더니 그제야 말간 웃음을 보인다. 급히 병원을 갔다 바로 출근해야 했더터라 내 마음은 차와 함께 내달렸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를 기점으로 왼쪽은 파란 하늘에 구름이 새하얀 깃털을 흩날리듯 바람에 흩어지고 있다. 오른쪽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거 같은 하늘은 울상이다. 분명 비가 오지 않을거라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구름이 그르렁거린다. 새옹지마,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다. 검은 구름이 날 집어삼킬듯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도 하릴없이 그안으로 뛰어든다. 피할 수가 없다.

예기치않게 인생에서 폭우를 맞았다. 늘 하고 있던 대비도 막상 그때가 되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 해서든 일어난다. 불행할것을 알면서도 불길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피할 수 없었던 결혼과 출산은 내 몸에 생채기를 냈다.

다행히도 가방안에 작은 간이 우산이 들어있었다. 비가 혹시나 오더라도 비는 맞지 않을거라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병원에 거의 가까이 왔을 때 앞유리에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 비는 대지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찌나 그악스럽게 떨어지는지 우산을 손에 든 사람들조차도 비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했다. 차를 엄마집 앞에 세우고 아이를 내려줘야 했다. 비 맞기를 피할 수는 없을 듯 했다. 눈치를 살폈다. 하늘을 향해 눈을 흘겼다.내 작은 우산은 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빗줄기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순간을 위해 설뫼(눈썰미)를 발휘해야 했다.

아이가 진실로 예뻐 보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괴롭고 힘드니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책임감이었다. 세상에 나오게 한 책임감으로 버텼다. 얼굴에 미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게 아니라 의미없는 얼굴 근육의 운동 기능일뿐이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는데도 내 스스로가 진정한 웃음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메마르고 푸석한 웃음으로 나를 엄마라고 의지하는 아이의 우주가 될 수는 없었다. 진정으로 아이에게 이 세상을 버틸 우주가 되고 싶었다.

벗어나려 기회를 엿봤다. 그래야 나도 이 아이도 살 수 있었다. 눈치를 살피고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불시에 닥친 비를 피해야했다.

비가 약간 줄어들었을 때 우산을 펴고 차에서 내린다. 아이를 내려주고 차에 바로 탔지만 젖지 않을 수는 없다. 우산이 닿지 않은 자리 내 옷가지에는 물이 튀었다.

모든게 끝났어도 마음에 남은 빗물의 흔적까지 지울수는 없다. 괜찮을 거라며 곧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비는 멈추고 태양이 구름 사이로 내리쬔다. 인생을 알 수없지만 비는 반드시 멈추듯이 나도 괜찮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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