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괴리

by 페니킴

살면서 누구나 억지스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나의 잘못도 아닌데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리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다. 왜 나는 이런 일을 당했을까. 심해에 목소리는 내 귓가에서 바람처럼 맴돌다가 흩어진다. 그리고는 또 모여 마음을 난도질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집착이 시작되고 피폐해져가는 마음을 직면한다. 그럴때 생각해본다. 오히려 상대방은 이리 힘들지 않을거라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표정으로 허허실실 웃고 있을거라고. 잘못도 없는 내 마음에만 무거운 무게추가 올려져 있을거라고 말이다.

인스타그램을 읽다 어떤 짧은 영상을 하나 보게 된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20대의 젊은 여성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어느날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에는 앉지 않지만 그날따라 힘들었던 그녀는 노약자석에 앉았다. 그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그녀에게 미친년이라 욕하며 나이도 어린게 일어나라고 막돼먹은 소리를 한다. 여성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모자를 벗으며 머리카락 한올 없는 민머리를 들이민다. 그리고는 "저도 노약자석에 앉을 자격이 있어요. 노약자석은 노인과 약자들을 위한 좌석입니다." 라고 말한다. 민망해진 할머니는 오히려 젊은게 당당하다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 영상 아래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모든 어르신들이 그런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힘에 기대어 세상이 본인 위주로 돌아간다고, 아니 본인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 대해 여러 세대들이 글을 달았다. 나도 겪어본 적이 있는 일이라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여러해 전 임신 중기를 넘어섰을 때였다. 차가 있었지만 거의 장롱면허 시기였기에 운전을 할때 마다 긴장을 하곤했다. 그럴때면 배뭉침이 몰려와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은 없기 때문에 버스를 왕왕 이용했다. 그날은 버스에 자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숨막히는 버스 안에서 한참을 서있다 보니 몸이 힘들었다. 그러다 내 앞에 자리가 생겼고 나는 주저없이 앉았다.

그때 앞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나이도 어린게 양심없이 자리에 앉는다며 기분 나쁜 볼멘 소리를 냈다. 겉으로 보기에 임신한 티도 나지 않는 내가 예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호로몬의 영향 때문인지 큰 소리를 낼 마음의 힘도 없이 한없이 작아진 나는 죄인이 된 듯 일어서야 했다.

분명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조금은 더 자신감있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조그만 일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던 그때는 도망치듯 벗어날 뿐이었다. 내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건가. 그건 아니였다. 분명 당연히 누릴수 있는 권리였고 요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잘못한 듯 양심에 가책을 느껴야 했다.

양심이라는 마음의 선한 소리는 알고보면 그 효율성이 떨어지는 듯 하다. 정작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사람은 느끼지 않는 듯 하다. 당연한 듯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세계관에는 양심이라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에 어느 가게를 지나가다 밖에 꽂혀있던 남의 우산을 거리낌없이 훔쳐가고, 아무렇지 않게 길에 커다란 쓰레기를 버리던 학생의 영상은 우리의 경종을 울리게 한다. 그 학생들을 불러 왜 그랬냐고 타박한다고 한들 그 순간의 모멸과 두려움을 벗어나려 미안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양심이 존재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에 뒤늦게 양심을 운운한들 진심일까 싶다.

그런 사람들은 잘못을 했어도 용서해주지 않는 상대방이 잘못이고 그 상대방을 나쁘게 몰아가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느낄 필요도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다. 또 그 이후에 무슨 자신감인지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본인의 요구를 하는 이상한 상황도 대면하게 된다. 미안하다며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지켜봐 달라는 그런 사람들의 말이 지켜지는 것을 본 적은 희박하다.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도 한다. 내 말이 틀린 것인가. 받아주지 않는 내가 나쁜 사람인가. 이해하려고 하면 그럴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도 빠져들어가 우울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행동과 잘못된 행동을 여러번 반복하고도 말로만 모면하려는 난잡하고 얕은 속임수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얽매이듯 그럴수록 나를 갉아먹을 뿐이고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부당한 것은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을 저질러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사람이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도록 마음을 더 단단히 붙들어 매야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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