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

by 페니킴

잊고 지냈던 나의 지난날들이 줄지어 연결되어 끊기지 않은 기차칸과 같다. 서류를 보자마자 머릿 속에서 출발을 알리는 굴뚝의 연기와 함께 기차의 기적소리가 울린다. 기차가 이동하듯 기억이 년도의 흐름에 따라서 줄줄이 흘러간다. 김oo 의 자녀로 출생등록 일자와 함께 출발한다.

내 일생에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어서도 안되고 열고싶지도 않은 기억들이 시간에 따라 열거된다.

년도에 따른 흐름을 쭉 보고 있다보니 나의 살아온 발자취가 잊고싶은 것 투성이다. 행복했던 기억도 분명 있을텐데 서류상에는 아픈 상처들만 남아있다. 문득 서글픈 기억들이 틈바구니 사이로 새어나온다. 억지로 눌러봐도 한번 시작된 흐름은 기어이 비적비적 존재를 드러낸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청년저축상품의 막바지에 올라탔다. 우리나라 행정상 정해놓은 청년의 기준에 따르면 작년이 나의 마지막 청년의 해였다. 혜택이 많은 상품이었기에 마지막 청년의 타이틀을 놓칠 수 없었다. 필요한 서류들을 넣었고 상품에 가입이 되었다. 그러나 이 상품은 2년동안 내가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 그대로 재직하고 현 거주지에 머물러야 2년 후에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게다가 3개월에 한번씩 두 가지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3개월에 한번씩 일자가 다가오면 재직증명서와 거주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초본을 홈페이지에 등록했다. 그럴때마다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해야했고 그때마다 내 아팠던 역사가 늘 되살아났다. 보지 않으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보자마자 생명을 얻어 활개를 친다.

출생했던 해에 김oo의 자녀로 첫 아파트에 거주지가 등록되었다. 두번째 거주지에서는 유치원시절을 보냈다. 오빠와 함께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고 연을 날렸다. 오빠를 닮은 배추머리 인형을 빙빙 돌리며 놀았고 철봉에서 떨어져 입아래가 찢어지기도 했다.

세번째 거주지는 좁은 골목 가장 깊숙한 곳에 단칸방이었는데 주인집 할머니의 손자인 고등학생 오빠를 짝사랑했다. 초등학교시절을 보내며 따돌림도 당했고 극복도 했다. 네번째 거주지는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우리가족이 마련한 우리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성인까지 보냈다.

처음부터 네번째 거주지까지를 지나며 아버지는 바깥으로 배회하셨고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해에 돈 문제로 집까지 뺏길 수 없었던 어머니로 세대주가 변경되었다. 난 그때부터 백00의 자녀로 서류에 기록되었다. 그 시간동안 행정구역이 바꼈고 도로명 주소가 사용되었다.

다섯번째 거주지에는 나는 누군가의 배우자로 등록되었다. 이혼 후에는 세대주로 내 이름이 기록되었다. 그게 마지막 줄이다.

보고싶지 않았던 이름과 잊고 지냈던 일들이 영원히 지울수는 없다는듯이 문서로 새겨져있다. 완전히 부정할 수도 지울수도 없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받아들이려고 해봐도 가끔은 종이에 새겨진 잉크를 파내어버리고 싶다. 때로는 소프트웨어에 등록된 과거를 삭제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과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행복한 다음 한 줄을 새겨넣는 것 뿐이다. 앞으로의 내 미래는 그럴것이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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