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이는 부모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코로나 시기 어느 어린이날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작은 선물을 주셨다.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키트였다. 떡볶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큰딸은 상자를 받아 들고 문을 열자마자 내게 자랑했다.
“엄마, 학원에서 떡볶이 키트 주셨어!”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받아서 좋겠네.”
말은 그랬지만, 속으론 ‘이걸 내가 또 만들어야 하네’ 하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다. 아마 그 마음이 딸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잠시 뒤, 퇴근한 아빠에게 큰딸은 다시 그 소식을 전했다. 아빠의 반응은 내 것과 달랐다.
“우와! 너네 학원 진짜 센스 있다. 네가 떡볶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이런 선물을 주셨대? 효주는 좋은 학원 다니네.”
아빠의 크고 따뜻한 호응을 보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똑같이 딸이 들고 온 ‘떡볶이’ 이야기였는데, 왜 우리의 반응은 이렇게 달랐을까.
나는 그 차이를 ‘언어의 태도’에서 보게 되었다. 아빠의 말에는 칭찬과 고마움, 감탄이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다. “좋은 학원” “센스 있다”는 표현 속에는, 딸아이가 다니는 곳에 대한 신뢰와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일상과 관계를 긍정의 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부모의 언어는 아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렌즈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순간, 우리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끓이기 귀찮게 이런 걸 왜 주시지? 간단한 것도 많은데…”
아이는 부모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부모가 불편과 불만으로 상황을 해석하면, 아이의 마음에도 그 색이 번진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우리가 어떤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세상을 믿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날의 나를 돌아본다. 내 말이 짧았던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느라 기쁨에 함께 올라타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떡볶이 실행’이 아니라 ‘기쁨에 동승해 주는 한마디’였다.
“와, 정말 좋겠다! 네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 주셨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다음에야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같이 만들자”라고 조율해도 아이의 마음은 이미 따뜻해졌을 것이다. 기쁨에 먼저 동승하고, 의미를 한 번 덧칠한 뒤, 현실을 조율하는 순서. 언어의 작은 순서가 아이의 하루를 바꾼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내 아이가 세상을 신뢰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을 갖도록, 내 말부터 빛을 머금자고. 감탄은 길지 않아도 된다. 고마움은 어렵지 않다. “좋다”는 한마디가 아이의 내일을 단단하게 만든다.
떡볶이 키트 하나가 내게 남겨 준 숙제. 부모의 언어는 결국 아이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 오늘, 먼저 감탄하고, 한 번 더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부드럽게 조율하자. 그 작은 말들이 아이 마음에, 오래가는 밝은 색으로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