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르

100여 미터, 매 순간 다르게 기억되는 기다란 길이 있다. 100여 미터, 곧은 그 길은 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하디 평범한 도로가 옆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를 잇는 길인데 우측 편엔 은행나무가, 좌측 편엔 맥문동과 덩굴이 기다란 길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길 초입부에는 도토리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얼마 전부터 도토리 하나 둘이 떨어지는 거보니 가을이 시작되었나 보다.


"엄마, 우리 이 길에서 도토리 몇 개씩 발견하는지 주워보기로 하자!"

"그래! 근데 둘러보니 도토리 모자만 보인다?"

"그래? 그럼 엄마, 내가 (킥보드) 타고 먼저 갈 테니까 엄마 꼭 뒤따라 와야 해! 나 타고 그럼 교문 들어간다! 안녕~"


그럴 거면 왜 같이 가자고 했는지 모르겠는 아이의 학교 가는 길. 2학년이 되면서 이런 정도의 등하교 길은 혼자서 다닐 법 한데 우리 아이는 혼자 갈 수 있는 길에 엄마가 꼭 동행하기를 바란다. 일상을 수다스럽게 풀어내지 않는 남자아이라 이 길을 오가며 불쑥불쑥 꺼내는 맥락 없는 이야기가 소중해서 흔쾌히 따라나선다.


오늘은 짤막했지만 도토리 줍자의 말, 언제는 또 씩씩 거리며 학교 일과 중 억울했던 이야기, 한 번은 빨리 길 지나서 아이스크림 먹자, 또 한 번은 축 쳐진 채로 아무 말 없이 걷기, 어느 날은 같이 등교하는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


같이 발맞춰 걷다 보면 유난히 짧게 느껴져 아쉬운 날이 있고, 또 어느 날은 덥고 지쳐 아이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날도 있다.


내 상태에 따라, 아이 상태에 따라, 날씨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따라, 그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와 감정이 다르다. 하루도 같지 않다.


하루에도 백여 미터 되는 그 길을 몇 번이나 걷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