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동률 콘서트 '산책'에 다녀와서...
사람의 오감 중 청각이 가장 보수적이랬나... 익숙하게 듣던 것에서 빠져나오기가 참 힘들다. 빠져나오려고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부렵부터 좋아했던 전람회, 이후 김동률이 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김동률의 음악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욱 이어 듣고 있다.
그래서 김동률의 콘서트만큼은 열성적으로 예매해서 꼭 갔다. 우스갯소리로 4년에 한 번가량 콘서트를 할까 말까 하는 바람에 올림픽 주기와 같다
..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 주기가 내 인생의 주요 시기와도 엇 비슷하게 맞아서 때때마다 콘서트를 기억해 보면 대학교 시절, 막 취업한 그때, 결혼상대를 만난 때,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자부타임을 할 때, 회사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때, 육아휴직을 한 지금 등 내 인생의 주요한 시기를 함께 흘러 지나갔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콘서트를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이 내게 깊게 느껴지는 순간은 대체로 내가 몹시 힘들 때이다. 평온하거나 행복할 때는 되려 다른 음악도 새로이 들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최근에는 아이 때문에 힘들 때 산에 올라 익숙한 낮은 음성과 익숙한 멜로디를 곱씹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었고('고독한 항해'같은)... 운전이 어려워 동네 운전도 긴장될 때는 '황금가면'을 들으며 긴장을 풀었다. 더 예전 생각을 떠올려보면 남자친구와 헤어져 마음이 괴로울 때 'replay'를 들으며 눈물콧물 흘리며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전람회의 거의 전 곡은 중고등 학교 때 공부가 하기 싫어 음반을 전곡 재생 시켜놓고 '퇴마록'이란 소설을 읽느라 지금도 전람회의 곡을 들으면 소설 속 어느 부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 인생 어느 부분에서나 bgm이 된 그의 음악이니 콘서트 소식이 있다고 하면 예매일을 저장해 두고 집중하여 티켓팅을 한다. 어렵사리 올해는 마지막 공연일자 예매에 성공했다.
그런데, 공연일은 다가오는데, 심한 감기에 걸렸다. 하루이틀 만에 나을 거 같지 않은 감기임에 분명해서 최대한 틈틈이 쉬려고 사나흘 노력했다. 겨우 기침도 코막힘도 덜해진 상태를 '만들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공연당일, 몸상태 때문에라도 구름 위에 뜬 듯 몽롱한 상태로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첫곡이 시작되면서부터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의 저릿저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동률 옹(팬들끼리는 그를 동률 옹이라 자주 칭한다.)의 멘트처럼 콘서트를 열 때 반복되었던 서너 곡의 멜로디가 예측가능한 부분의 박자에 맞춰 펑펑 터지며 펼쳐지는 눈앞 무대의 모습, 그가 등장하는 모습. 등이 짜릿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동시에 2년간 잘 살다가 이곳에서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이 들어 뭉클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이렇게 큰 공연장에서 7회 차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느끼며 공연이 열리고 여러 곡 흐르며 공연장에 귀도 눈도 익숙해져 갈 즈음 1부 끝 곡. '산책'을 듣다가 눈물이 흘렀다. 편안하고 담백한 그 곡이 지금 내게 가장 와닿는 곡이었나 보다. 휴직 중 시간이 생기면 얕은 산을 걷곤 했는데 그때 들었던 마음과 곡의 가사가 비슷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는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님의 '졸업'연주를 들으니 절로 전람회가, 전람회의 멤버였던 서동욱이 떠올랐던 것 같다.
얼마 전 전람회의 서동욱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김동률 3집 앨범의 히든트랙 곡, '떠나보내다'를 연속 듣기를 했었던 지라 혹 이번 콘서트에서 전람회의 곡이 나온다면 울컥할 것만 같았다. 고상지 밴드의 연주는 '졸업'이란 곡이 더욱 추억 속에서 아련히 느껴지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이어 2부 시작에서 편곡된 '시작-동화-모험-황금가면'의 편곡도 좋았다. 곡의 흐름도 자연스러웠고 그 곡들로 스토리를 만든 것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즐거웠다.
곡 사이사이 곡에 대한 설명, 밴드 구성원 소개 등도 좋았다. 원곡을 워낙 여러 번 들어서 콘서트를 위한 편곡은 어느 부분에 어떻게 힘을 주었는지 알려주면 그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진다. 한 가지 곡도 두 가지 버전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도 그가 콘서트 용(?!) 편곡을 하면서 생긴 즐거움이다.
(그래서 이번에 들려준 곡들도 콘서트 버전 앨범이 발매되어 좋은 음향으로 즐기고픈 바람이다.)
기대한 앙코르곡은 '첫사랑', '기억의 습작'이었다. 첫사랑을 부르면서는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곡을 이어가지 못했다. 서동욱의 사진을 보자 관객들도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많이들 눈물을 흘렸다.
김동률과 그의 팬다운 추모방법이었다. 함께했던 노래로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추억하게 했다.
그가 음악을 한 32년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어 그저 감사했다. 한결같이 그 다운 모습으로 있어주어서...
감기약 기운 때문인지 몽롱한 정신이지만 콘서트 여운이 남아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깰까 봐 오늘 콘서트에 나왔던 곡들을 작게 틀어놓고 한줄한줄 오늘의 감상을 적고 있는 지금 이 모습도 후에 동률 옹의 어느 곡과 함께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