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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맞아 안 맞아

엄마와 나는 안 맞는 게 확실하다

by 그레이스웬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소재가 엄마인 경우 가슴이 아파오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런 것들을 볼 때는 후회를 하고 미안해하고, 보고 싶고, 엄마한테 진짜 잘해야지 다짐에 다짐을 하고,

그러나 막상 현실은 또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디어마이프렌즈>에서 장난희여사와 박완 모녀를 보면서 딱 우리 모녀 같아서 최고로 몰입하며 봤었다.

애증의 관계도 아니고, 엄마와 딸의 관계란 참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든 무엇이 있다.

드라마 속 박 완처럼 나도 엄마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그 묘한 관계.


엄마는 나보다 정확히 스무 살이 더 많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엄마가 무척이나 젊은 편이다. 그래서 좋은 건 사실인데 짱짱한 성격은 늙지도 않나 싶을 때가 많다.

살아온 굴곡진 인생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엄마를 미워하지 않으려, 이해하려 언제나 애쓰지만 여전히 그냥 우리는 안 맞는 거라고 결론지을 때가 더 많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진심으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아니 내가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엄마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같았고, 곧 그 기분이 태도가 되곤 한다.



오늘은 낮에 남편이랑 밥을 먹으면서 맥주를 한잔 하고, 아들이 피아노와 태권도를 가 있는 시간 동안 잠깐 낮잠을 잤다. 아이가 방학을 하니 똑같은 하루가 두 배는 더 힘들게 느껴지는데, 에너지 낭비가 심한지 맥주 한잔에 졸음이 물밀듯 쏟아져내렸다.


엄마의 전화에 깼다. 엄마가 전화를 한 번 더 했었는데 내가 안 받았다고 했다.

진동으로 해두고 잤다고 했다.

"어디 아파? 뭔 낮잠을 자느라고."

말투가 벌써 뭔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척하면 척이다. 내가 엄마를 모를까..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해서 오래간만에 좀 잤어. 왜? 무슨 일 있어?"

"뭔 일이 있어야 전화하니?"

그냥 바로 용건을 말하면 좋으련만 뭘 그리 빙빙 돌리려는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핀잔을 하느라 기승을 다 써버린다.

"다른 게 아니고, 내가 뭘 하는데 뭐가 잘 안돼."

"뭔데 말해봐."

"아니 내가 쿠*에서 뭘 샀는데 그게 직구인 거야."

"응"

"결제도 다 했고 기다리는데 택배사에서 통관부호를 쓰라고 계속 문자가 와. 그래서 통관부호도 예전에 발급받아놓은 게 자동으로 뜨는데 뭐가 '이전으로'랑 '변경'이란 말밖에 없고, 변경을 누르면 변경할 게 없다 하고 이전을 누르면 처음부터 이름이랑 주소랑 다 다시 써야 하고."

"...................."

진짜 이걸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있을까?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잠시 가만있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아니, 엄마. 그러니까 통관부호를 받았는데 뭐가 이전이고 머가 변경이 뜬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이게 뭔지 모르겠으니까 너한테 전화를 한 거지"

아놔, 이런 막무가내 한 경우가.... 내가 차근차근 정리를 하며 물어봤다.

"그러니까 쿠*에서 결제를 할 때 처음에 통관부호를 안 적은 거야? 그런데 택배사에서 통관부호를 적으라고 했다고? 그럼 쿠*에 들어가서 적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쿠*에서 적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어디다 적으라는 건데."

한숨을 푹 쉬신다. 나는 그 한숨소리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아니 엄마가 설명을 똑바로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을 캡처를 해서 나한테 보여주던가. 내가 지금 엄마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내가 뭘 다 알아? 난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알았다. 됐다. 그냥 취소하지 뭐."

"아니. 그러니까..." 뚜,,뚜,, 뚜....

사람 말도 다 안 끝났는데 전화를 끊어버린 엄마.

잠이 확 깨면서 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맞아, 안 맞아. 역시 안 맞아"


그리고 몇 시간 후 화가 좀 누그러졌는지 (사실 화날 일도 아닌 거잖아?) 다시 전화가 와서 차분히 설명을 한다.

듣고 보니 엄마가 문자를 받은 게 택배사가 맞는데 거기서 통관부호를 적으라는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럼 그렇지. 일이 그렇게 진행돼야 맞지. 근데 아까는 그 얘기는 쏙 빼놓고 나보고 못 알아듣는다고 성질을 부린 것이다).

엄마가 그 링크로 들어가 통관부호 조회를 하니 자동으로 엄마 개인정보가 뜨는데 거기서 '이전화면'과 '변경'이라는 글밖에는 없고 '완료'라든가 '다음'이라는 메시지가 없는 것이다.

이건 내가 봐도 모르겠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택배사에 다시 문의해 보라고 했다.

급한 게 아니면 내가 곧 갈 테니 가서 하는 걸로 전결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스타일이다.

조금 더 친절하게 얘길 해주면 되는데 통관부호 관련된 거면 당연히 국세청 아니니? 그걸 왜 몰라? 이런 식이다.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마가 생각하는 걸 내가 무슨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 아는 건 없는 거라고.

어째서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늘 엄마랑 지지고 볶고 싸우기만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드니 자꾸만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진다.

엄마의 내면아이를 불러내서 나보다 어린 엄마를 달래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한참을 더 살아야 하는데 엄마가 조금 더 유한 사람으로 살기를, 그래서 스스로도 늘 행복하기를.

나는 내 엄마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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