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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인천의 엄마 집에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있는 2주 동안 두어 번의 티격태격과 찬바람이 있었지만, 역시 다시 헤어질 때는 걱정과 미안함이 가장 큰 것 같다.
매 번 만나고 매 번 헤어지는 우리임에도 여전히 2%의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엄마는 많은 것을 바리바리 싸주었다.
홈쇼핑을 보다가 좋아 보이는 비싼 이불을 사줬고, 고가의 마사지 기계도 나에게 넘겨주었다.
넘겨받으면서 '이런 건 또 언제 샀대' 생각했다.
이렇게 고액의 돈을 당신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내심 기분 좋았다.
또 고가의 잉크코트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고 싫다고 했지만, "이젠 너도 나이가 있으니 입어도 된다. 나보다 니가 입으니 더 잘 어울린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니가 입으니 너무 예쁘다." 하면서 기어이 나에게 주었다.
왜 자꾸 엄마껄 나한테 줘? 했다.
마사지할 마음도 사라졌나? 멋진 옷을 입는 것도 귀찮아졌을까? 또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옷은 살이 쪄서 안 맞아서 주는 거고 마사지는 셀프로 하기가 여간 귀찮지 않은 것이냐며 그러니 나보다 부지런 떠는 니가 해라 뭐 이런 거란다.
그런 거라면 안심하고 내가 가져가겠다며 챙겨 왔다.
직접 말려 빻은 고춧가루, 직접 만든 막장, 잡곡에 콩에.. 두고두고 내가 오래 먹을 것들만 가득 챙겨주었다.
피터팬 키우려면 잘 챙겨 먹으라며 녹용에 홍삼에 도라지배즙에....
사람 미안하게 또 이렇게나 잔뜩 챙겨주냐. 싶으면서도 고맙고 좋았다.
그렇게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장시간 운전은 남편이 혼자 다 했는데 나는 몹시 지친 기분이었다.
다음 날 피터팬은 갑자기 열이 났다.
밤에도 푹 잘 잤고 아침까지도 열이 없었는데, 기침 콧물도 없고.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39도까지 열이 오르나 싶게.
병원에 가서 코로나 음성 확인하고, 증상이 열 뿐이라 해열제만 처방받아 왔다.
왠지 나도 온몸이 콕콕 쑤시는 것 같아 진료를 받으려다가 약국에서 쌍화탕이나 하나 사 먹고 잠을 좀 자면 나을 것 같아 진료는 받지 않았다.
약사님은 쌍화탕보다 갈근탕이 더 좋을 거라며 그것을 권해주셨고, 집으로 오자 마자 갈근탕을 먹었다.
피터팬과 나는 한 숨 자기로 했다.
자는데... 갈근탕은 이런 거니? 왜 더 아픈 거지?
꼭 처음 코로나 백신 접종하고 끙끙 앓았던 그때처럼 아파오기 시작한다.
열도 조금 나는 것 같고, 온몸이 갑자기 막 쑤셔온다. 마치 참고 있었던 것처럼.
끙끙대며 자다가 일어나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마저 누워서 마저 끙끙 앓았다.
그렇게 하루동안 아주 많은 잠을 잤고, 아주 많이 끙끙거렸다.
다음 날 피터팬은 열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았고, 나 또한 몸이 상당히 개운함을 느꼈다.
마치 마법처럼.
남편은 "너네 둘이 짠 거 아냐? 어떻게 갑자기 둘 다 하루를 꼬박 아프고, 바로 이렇게 갑자기 나을 수가 있어?" 했다.
피터팬이 말했다. "아빠 뭔 소리야. 어제 우린 정말 아팠다구"
맞다. 우린 정말 아팠고 갑자기 하나도 안 아파졌다. ㅎㅎㅎ
친정집이 예전만큼 편하지 않은 거였을까? 오랜 여독이 풀리지 않은 여행길처럼 우린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바짝 아프고 나서인지 개운함이 말로 표현 못할 만큼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레이코와 격렬한 섹스를 4번이나 하고, 완전히 나오코와 이별했을 때 느꼈을 그 개운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나? ㅎㅎㅎ <상실의 시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집에 오니 너무 좋구나.
내 루틴이 시작되는 자그마한 내 책상.
무거워서 많이 들고 가지 못했던 책들. 노트들을 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친정에 있는 내내 이 책상이 너무도 그리웠었다. 무거워도 조금 더 챙겨 올걸 후회했었다.
'나는 내 책상이 그리워서 아무 데도 못 떠나면 어쩌나..' 이상한 고민을 잠깐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괜찮아, 커다란 캐리어 한가득 책상만 빼고 다 넣어가면 돼."라고 결론지었다.
지금 이 자리가 좋아서, 어떤 곳으로도 못 떠나면 안 될 테니까.
나는 역마살이 있는 여자니깐~
아~~ 집이 좋다~~~
한 줄 요약 :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