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각
티브이를 안 보고 살다가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트롯 경연프로그램 2개를 연신 보고있는 걸
옆에서 같이 보다보니 역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본방송을 시청했으므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넷플에서 1회부터 다시보기를 하고 있다.
미스터트롯은 유료 다시보기라 킵하고 불타는 트롯맨은 넷플에서 하고 있어서 보는데, 연예인대표단 중에 유난히 점수를 짜게 주는 심사위원이 있었으니 바로 윤명선님이다.
처음에는 누군지도 몰랐는데 곡을 쓰시는 분이시더라.
계속해서 보다보니 이 분이 상당히 냉정한 심사평과 야박한 점수를 주시는데 13명의 대표단 중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시는거다.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던 사람이 심금을 울리는 정통 트롯에 가까운 구슬픈 노래들을 참가자들이 부를때마다 눈물을 훔치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실력있는 작곡가로서 가사를 쓰고 곡을 쓰시는 데는 저런 감성이 필요한가보다. 뭔가 사연있는 노래에 유난히 공감하시는 것이 저분도 사연이 있나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서도 유난히 눈물나는 노래들이 있다.
하지만 그 눈물나는 노래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에비하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 그런 것이 있기에 곡도 가사도 잘 쓰시는게 아닐까 하고.
그 후로 그분이 초반에 점수에 야박했던 이유도 감히 이해가 되고 짐작이 되었다.
트로트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다.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만 애써 외면하기도 했었다.
트로트를 들으면 언제나 아빠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국민학교 때 건설회사를 다니셨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 현장감독으로 몇 년을 나가있었다.
그런 아빠가 일 년에 한 번 귀국을 하는 날에는 내가 하교를 해서 집으로 갈때 저 멀리 대문 밖 골목길에까지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다. 트로트였다.
아빠는 트로트를 사랑했고, 음악을 사랑했다.
엄마는 딴따라 팔자라고 싫어했는데 그래서인지 직업으로 갖지는 못했다.
취미로 아코디언을 치고,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 풍금도 치시며 트로트를 전축 음략 가득 높여 크게 듣고 따라불렀다.
나는 아빠의 그 흥이 좋았다.
언제나 일 년 내내 골목어귀에서부터 아빠가 틀어놓은 트로트 소리가 들리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러나 나는 트로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들으면 생각나니까. 들으면 보고싶으니까. 들으면 용서해야할 것만 같으니까.
그러면서 늘 생각했다.
시대를 잘못타고 난 사람이라고.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태진아님만큼은 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나는 늘 아빠를 짠해하면서도 미워했다.
나에게는 이러한 사연들이 있는데 그래서 눈물이 났는데 윤명선 작곡가님과 눈물 코드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끼니 저분은 왜 눈물이 나는 걸까 하는 이상하고도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참가자들의 노래를 들을 때 유난히 눈물이 나는 노래들은 대체로 부모님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엄마이겠지만, 나는 아빠가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 화면을 유심히 보면 윤명선 작곡가님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작곡가님은 어떤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뜬금없이 그것이 알고싶다.
'비 내리는 고모령 '
울 아빠가 잘 부르던 노래를 오늘은 피하지 않고 들어본다.
가사가 귀에 들어오니 왜인지 아빠가 이해가 되는 것도 같고.
왜 때문인지 슬슬 용서도 되는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