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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Jan 23. 2023

혼포차

내 이럴 줄 알았지


혼술 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들어왔는데 아주 어이가 없는 곳을 찾았네

안주가 너무 후진데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이 들어서 친한 동생한테 사진을 찍어 보냈다.

“3,000원짜리 같은데 이게 13,000원이래”

“언니, 딱 13000원짜리 같네”

“그래? 13,000원짜리 같아? 왜 내 눈엔 3,000원짜리로 보이냐”

“언니가 너무 집에만 있었고만. 쫌 나가. 세상을 알아야 글도 쓰재”


맞다. 너무 집에만 있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랑 싸우고 나서 자꾸 눈물이 나서 혼자 술을 먹기 위해 허름한 포차를 찾았는데 안주를 보고 잘못 욌다 싶었는데 동생이랑 톡을 하면서 헛웃음이 난다. 잘못 온 게 아니네. 내가 원하던 허름 그 자체인걸.


신식인테리어에 예쁘고 화려한 곳들을 지나쳐 허름한 간판이 끌린 건 아마도 지금 내 모습이 허름해서이겠지.

울어서 퉁퉁 부은 눈. 잠옷바지 차림에 마스크가 없었다면 길을 나설 엄두도 못 낼 꼬락서니를 하고 들어와서 안주를 고르고 무엇을 바랐던가.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 그냥 혼자 술 마실 공간만이 필요했을 뿐.

이만하면 딱이다.


지금 시간 7시 30분.

집에서 엄마랑 치맥으로 캔맥 2개를 먹었으니 내가 이 술집에서 버틸 수 있는 맥주는 고작 3병 정도이리라.

순간 노트북을 들고 나올걸…. 하는 정말 황당한 생각이 드는 건 처음 집을 나올 때의 마음에서 이미 벗어났다.

그저 찬바람을 맞고 싶었고 그 바람이 칼바람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칼바람에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들어왔다고 날씨 탓을 할 수 있는 것도 고마웠다.

 허둥지둥 잡은 자리가 마침 화장실 앞이라서 그것도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

많은 사람들을 등지고 않을 수 있어서 내 사야에 보이는 건 카운터와 화장실과 출입문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 고마울 정도로 나는 지금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피하고 싶어서 피했다. 내 에너지가 너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만 박차고 피해 나와버렸다.


그렇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뭔가를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렇게 20년 차이가 나는 우리들이 한결같이 물러섬 없이 똑같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물러서야 하는가? 왜? 딸이라서? 더 어린 사람이라서?

그럼 엄마가 물러서야 하는가? 왜? 엄마라서? 나보다 어른이라서?

왜 우리는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양보도 할 수 없는 걸까?


3-4년 전인가?

내가 엄마에게 심한 말을 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린단다.

그 얘길 우리가 싸우는 도중에 한다.

그래서 뭐? 그걸 가슴에 담고 있을 일이야?

엄마는 여자면서도 딸의 인생을 그토록 잘 분리하면서 나에게는 왜 엄마를 분리시키지 못하게 하는데?

엄마는 내 가슴에 못 박은 말 하나도 없지?

어디 나도 다 끄집어내 봐?


우리의 말싸움은 마치 닭이 먼저나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다.

왜 그런 싸움을 해야 하는지 나는 매번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해되지 않음에도 똑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엄마가 그랬다.

너 이리 앉아봐. 너 내 인생 얘기 한번 들어볼래? 넌 잘 모르잖아?

싫어. 안 듣고 싶어. 안 들어도 딱 보이네. 그러니 엄마가 이모양이지.

이러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지금 갱년기가 온 것 같다.

어쩌면 폐경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마음이 너무 심란한데 엄마가 당신 인생 얘기를 이제 와서 하겠단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엄마 인생 얘기는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그런 내 마음은 상관없이 당신이 하고 싶음 해야 한다고?

아니, 난 안 듣겠다. 적어도 자금은 아니다


또 서운해하겠지. 우리 집 딸년만 이상하고 못된 년이지.

나는 기꺼이 이상하고 못된 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치면? 나는 엄마 인생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가 말이다.


엄마는 모르는 게 있다. 아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오늘 이전의 모든 날들과 오늘이 다른 것은 엄마의 딸이 유난히 늙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엄마의 딸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엄마라면 …. 그 정도는 알아채줘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만 엄마를 알아봐 달라고 하기 전에. 엄마 딸도 엄마의 딸이기 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잘잘못을 따지기엔 엄마도 나도 너무 늙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만 엄마의 잘못이 8 같지?


전화가 온다.

울엄마. 안 받는다.

또 온다.

내사랑 쭈니

망설였지만 안 받는다.

친한 동생에게서 문자가 온다.

후회하지말고. 울지 말고. 웃다가 와….


걱정하지마. 곧 들어갈게…..

3병 클리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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