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경주 첫날.
피터팬 겨울 방학이 곧 끝나간다.
나에게는 너무도 고달팠던 시간이 끝나는 것이고, 피터팬에게는 베짱이의 띵가띵가 시간이 끝나는 것이니 너와 나의 희비가 갈리는 시간이다.
올 방학에 피터팬은 외가댁에서 2주를 흥청망청으로 보냈고, 며칠은 친가댁에서 또 세상 프리한 날들을 보냈는데, 남편이 방학도 끝나가니 여행이라도 가자고 했다.
너는 좋겠다 피터팬. 그렇게 놀았어도 또 여행을 가자는 아빠가 있어서.
방학 내내 내가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손주에게 뭘 해도 오케이 했으니, 그것이 내가 두려워하는 게임과 TV시청이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시간들을 게임하고 TV를 보며 보냈으니, 다시 이전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 뻔하기에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아직은 약속과 규칙을 잘 지키는 저학년이라 망정이지, 나는 그렇게 책육아를 하겠다고 오만 난리법석을 다 떨었는데 이제 와서 그 긴 시간이 (게임을 알게 된 시간 대비) 물거품이 될까 봐 노심초사 본의 아니게 잔소리가 많아지는 중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피터팬의 게임과 TV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들의 제주 한 달 살기를 피터팬은 자주 이야기한다.
그때처럼 그렇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살러 가자고. 처음엔 그저 좋은 기억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점 오직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직 공부학원을 보내지도 않고, 집에서 학습을 시키지도 않는데도 뭔가 마냥 놀고만 싶어 하는 마음인 것 같아서 슬슬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마냥 너 하고픈대로 해라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도대체 갈피를 못 잡겠다.
이런저런 방학 스트레스는 그것뿐이 아니다.
삼시세끼 돌밥을 차려줘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그래서 이번 여행은 피터팬을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애견동반펜션'을 검색했다.
처음에 내가 택한 숙소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계획한 날짜에 애견동반가능한 룸이 매진이라 두번째로 후기가 좋은 곳으로 왔다.
지금 여기는 '경주 오푸스 11'이다.
내가 검색하면서 혹 했던 사진들이다.
이건 내가 직접 찍은 건데, 그대들이 보아도 혹 하지 않는가?
그러니 혹한 건 나일뿐, 나를 혹하게 만든 그들의 카메라를 탓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나는 겨울에 다시는 여기를 찾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프런트 직원도 친절하지 않았고, 이 정도의 시설에 하루 30만 원 정도를 쓰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였다.
뭐가 별로였나요?라고 묻는다면,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방 안에 있는 수영장도 매우 작았고, 야외 풀장은 추워서 모든 사람들이 코가 빨개질 만큼 물이 따뜻하지 않았고, 버블타임의 버블은 거품을 쏘는 기계 앞부분만 풍성했으며, 룸에서 실외까지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젖은 채로 수건만 몸에 두른 채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감기 걸린 사람들 태반일 듯.
야외 히터 하나 없다는 게 너무 성의 없어 보였다.
차라리 야외풀을 개방하지 말던가.ㅜㅜ 울애기 감기 걸릴 판.
어메니티도.... 그냥..... 말을 말자.
이렇게 생각하니 제주도 한 달 우리 집은 정말 저렴했던 거라며...
매일 온수로 자쿠지를 이용했고, 세탁기도 있었으며 이보다 훨씬 넓었고 투베드였는데 300이었으니 얼마나 저렴한가.
밤에 더 예쁜 야외 인피니티풀이지만, 바람이 불고 너무 추워서 어디 앉아 있을 엄두도 못 낸다.
이 정도라면 이쯤에서 슬슬 숙소 탓이 아닌 날짜를 잘못 잡은 내 탓이려나.. 하며 슬슬 뒷걸음질 쳐본다.
룸에 달린 수영장에서 그나마 물온도값을 뽕을 빼주는 피터팬 덕에 가스비는 아깝지 않았지만, 수영복을 빨 수 있도록 최소한 짤순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한 달 숙소와 하룻밤 숙소의 퀄리티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나는 솔직히 너무 블로그 후기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협찬을 받아서 좋은 후기를 써줘야 하는 매너는 기본이라 하더라도, 너무 개인적인 생각에 치우친 후기가 많고, 무조건 좋다, 대박이다라고 부풀려 칭찬하는 후기들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남이사 협찬을 받은 후기를 뭐라고 썼건 간에 관심 1도 없던 사람인데, 숙소 후기는 조금 더 양심을 가진 블로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춥지 않은 날에 왔다면 나도 호들갑파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한 두 달 전의 후기들을 보고 왔으니, 그때도 겨울이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것들을 나는 후기에서 하나도 못 보았으니, 괜히 뒤통수 맞은 느낌이랄까.
난 그리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님에도 나는 충분히 불편했다.
지금은 집으로 치면 베란다쯤으로 보이는 거실 밖 실내 바비큐 공간에서 양껏 술과 고기를 먹은 후 글을 쓰고 있다.
내 옷은 너무 불편해서 나에게 펑퍼짐한 남편의 아우터를 걸치고 있는데 발이 시리다.
와인으로 몸의 온도를 데워보는데도 손가락이 시리다.
여기는 야외인가.
겨울에 찾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없어 보이는 숙소에 실망감을 느끼면서도, 남편 말마따나
"그래도 나오니 좋다 그렇지?"
그래도 나오니 좋다.
내일은 초등학생들을 경주에 데리고 오는 그 이유를 임무로 완수할 예정이다.
여행에서도 학습을 시켜야 할 것 같은 한국어머니. 나도 한국어머님인가 보다.
하지만, 그 어느 곳 앞에서도 아이에게 설명하느라 입을 바쁘게 놀리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나오니 좋은 경주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