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아주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아직까지 내리는 걸 보니 이번 봄비는 조금이나마 답게 오려나보다.
내가 있는 지역은 몇 년째 가뭄이다.
언젠가부터 비를 못 봤다.
타 지역엔 물난리가 나는데 여긴 한 방울도 없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선 그것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헤아릴 생각도 못한 채 나는 그저 낭만이 메말라 가는 듯하여 비를 기다렸다.
어제 신문을 보았다.
드디어 광주에 물이 바닥이 났다고 했다.
물이 부족한 건 비단 여기뿐만이 아닐진대 왜 콕 집어 여기를 이야기하나 싶었다.
몇 달 전부터는 아이 학교에서도 공문이 알림장으로 자꾸만 온다. 물을 아껴 써야 한다고.
단 한 번도 물을 아껴 쓴 적은 없었다.
지구가 아프다는 소리는 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꾸만 물 얘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뭔 사달이 났나 보다 하고 이제야 둘러본다.
여기는 곡창지대다. 예로부터 비가 많이 와야만 하는 지역인 것이다.
도심보다는 여기에 물난리가 나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물난리가 날 만큼 비가 퍼붓는다 해도 이 땅은 그 물을 쭉쭉 빨아 당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물이 고파진 것이다.
문재인 전 정부가 이 지역의 수문을 열었다고 했다.
농민들이 제발 수문을 닫아달라 해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어제 알았다.
광주시민이 40일간 쓸 수 있는 물이 엉뚱하게 흘러가버렸다고 했다.
괜히 눈을 흘긴다. 왜 그랬냐고 해봐야 소용없으니 눈이라도 흘겨본다.
어쩐지 자꾸만 비가 고프더라니....
그렇게 매 번 기다리고 기다렸던 비가 어제부터 온다.
제법 비답게 온다.
나는 신이 난다.
예전엔 그냥 빗소리가 좋아서, 그 분위기가 좋아서, 비 오는 날의 감성이 좋아서 신이 났다면,
지금은 조금이라도 이 땅을 위로하며 신이 난다.
더 와라. 더 퍼부어라. 마음껏 쏟아져다오.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나는 막걸리를 마신다. (갑분막?)
예전엔 내 잔을 채우기 바빴다면 지금은 한 잔 따라 하늘에 먼저 드려본다.
비가 오면 왜 막걸리가 생각날까
나는 비 오는 날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축축하고 꿉꿉해서 싫을 법도 한데 그냥 좋았다.
좋은 데 뭐 이유 있나.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못 찾고 있긴 하지만 무튼 여전히 좋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었어도 막걸리는 마시지 않았다.
왠지 막걸리는 돈 없는 어른들이나 마셔야 하는 것 같았고, 젊은 나에겐 안 어울리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막걸리 보단 폼나게 와인을 마셔야지. 하면서 와인을 먼저 배웠다.
그렇게 나도 점점 나이가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와인을 마시다가, 알고 보면 와인도 유럽 전통주 아닌가. 우리나라도 전통주가 있는데 왜 굳이 다른 나라 전통주에만 관심을 가지나 싶어 막걸리를 사 왔다.
먹고 다음 날까지 머리가 아파 혼이 났고, 또다시는 마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를 막걸리에 빠지게 한 막걸리가 출시되었으니 바로 '지평'이었다.
그 후로 지평 막걸리만 마셨다. 정말 막걸리 맛을 알아버렸다.
그리곤 여행을 갈 때마다 지역 막걸리를 맛보는 게 취미가 되어버렸다.
지평을 벗어나 세상의 모든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건 한 동안 안 마신다 해도 비만 오면 막걸리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왠지 비 오는 날엔 맥주도 안 어울리고 와인도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오직 막걸리와 전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되는 건 내가 한국인이라서 일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던 적이 있다.
비 오는 날 막걸리가 생각나는 건 막걸리와 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궁합을 가졌으며, 빗소리와 전 부칠 때 나는 기름 소리 때문에 우리 뇌가 그것을 원한다고 했다.
또한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비가 오면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혈당은 떨어지고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원한다. 밀가루가 당기는 이유다.
또한 전과 막걸리가 궁합이 맞는 이유는 밀가루가 소화기능을 떨어뜨리는 반면, 막걸리의 풍부한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소화기능을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쩐지 갖다 붙인 말 같기도 하지만, 뇌과학을 모르는 나는 그냥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기로 한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비가 오면 막걸리가 생각난다. 부침개도 생각난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납득이 안 가겠지만, 애주가들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ㅎㅎ
막걸리 안주로는 '전'이 딱이긴 해도 도토리무침이나 김치종류나, 갈비찜 같은 음식도 너무 좋다.
나는 유독 사극에서 나오는 그 주막집 막걸리를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곤 한다.
별 거 없는 안주에도 극 중 아저씨들이 수염에 막걸리를 묻혀가며 벌컥벌컥 마시는 걸 보면, 침을 꼴깍한다.
왜 그렇게도 맛있어 보이는지.
한 때 유행했던 막걸리집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얼음골막걸리 인가? 아무튼.
살얼음 동동 띄워진 동동주 한 잔 마실 때의 그 여름밤이란.
무엇보다 내게 그리운 막걸리는 '제주막걸리'였다. 일단 술병이 예쁜 핑크핑크다.
핑크 막걸리병을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선 술병 자체만으로도 영롱했다.
저걸 마시러 제주엘 또 가야 하는데... 하며 그리워하곤 한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막걸리 사들고 내 집을 찾아줄 친구가 문득 그리워진다.
왜 다들 막걸리를 안 좋아하는 걸까. 뒤끝이 안 좋다고 하는데 나도 처음에 그 두통을 생각하면 안 마시고 싶다. 그런데 섞지 않고 위에 맑은술만 마시면 뒤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렇더라. 그래서 섞어마시지 않는다. 맑은술만 따라 마신다.
와인도 좋고 맥주도 좋지만, 비 오는 날 만이라도 우리의 전통주를 많이 마셨으면 좋겠다.
요즘 mz 세대들이 또 그렇게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왠지 자꾸만 mz에게 배울 게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비 오는 날 막걸리를 좋아한다.
가끔은 비가 오지 않아도 막걸리가 생각난다.
오늘은 비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과 함께 마신다.
그리고...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