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때문이야 ㅎㅎㅎㅎㅎㅎ
-요리에 대해서-
사실 요리를 하게 된 건 아이 이유식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그전엔 쌀도 안 씻어봤고 대개 사 먹고살았다.
늦게 낳은 아이인 데다가, 안 생겨서 포기하니 생긴 아이라 남들은 이유식 배달을 시킬 때 나는 굳이 내 몸을 불사르고 싶었다. 그렇게 배운 게 요리다.
하나 둘 요리를 배우며 해볼때마다 나는 공부머리처럼 요리머리도 따로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 요리머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잘은 못하지만 낑낑대서 하나라도 해놓고 나면 다들 맛있다고 했다. 울 엄마 손맛을 닮은 건지 하면 제법 맛이 있었다. 다만 요리머리가 없어서 하나를 만들 때에도 레시피가 필요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요만큼, 쪼르르, 한 바퀴 뭐 이런 모호한 말들로 알려주니 차라리 검색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똑 떨어지게 몇 스푼, 몇 컵 이런 식이니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계량스푼, 계량컵을 시작으로 요리에 필요한 조리도구들을 사기 시작했다. 뭐든 장비발이지 암만!
요리를 배우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네이버 대표 요리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가입을 했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세상에 없는 요리가 없었다. 그것도 계량이 똑 떨어져서 모호한 계량이란 건 있을 수 없었다.
열심히 요리를 하다 보니 이제 제법 할만해졌다. 카페에 열심히 글을 올렸더니 팬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곧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요리그램으로 소통하고 사진 찍어 올리면 우아~하는 반응이 설렜다. 그것을 위해 귀찮아도 요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점점 목적은 산으로 치달아서 나중엔 요리보다 그릇에 빠져버렸다.
아무튼 요리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꽤나 많다. 지금은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요리를 하지 않는다.
플레이팅이 재미있어 요리를 했던 그때와는 달리 요즘은 진짜 먹기 위해 요리하는데, 그때 몸에 배어 그런지 나는 한식보다 양식이 더 쉽다. 처음 요리카페에서 해보기 시작했던 것들은 역시나 자주 먹는 한식이 아니라 양식이었으니까. 신기하고 먹어보고 싶고, 식구들에게 우와~ 소리를 듣기 위해서 양식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잔뜩 사들이기 시작한 그릇들은 전부 양식기였으므로 그릇을 사용하려면 양식을 해야 했다.
뵈프 부르기뇽, 찹스테이크, 포-토-푀, 각종 파스타, 라따뚜이, 굴라쉬, 뇨끼, 등등등....
이런 음식들은 모두 와인과 페어링 하기 좋아서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지라 ㅎㅎ모든 식사엔 그에 맞는 술을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은 예쁜 상차림을 해두고 사진을 찍지도 않지만, 오직 내 식구들을 위해 가끔 인스타용 테이블 세팅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런 테이블을 보며 자란 우리 아들은 "엄마 요즘은 왜 예쁘게 상 안 차려?" 물어본다.
"응, 이젠 귀찮아. 그 시간에 엄만 책 읽을 거야" 하면, "그때처럼 예쁜 그릇에 밥 먹고 싶다~" 한다.
집에 그릇이 넘쳐나는데도 쓰는 그릇만 쓰고 있는 게 민망해져 식기는 가끔씩 바꾸며 상을 차리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데코까지 신경 쓰지 않은 지는 오래인데 아들의 저 한마디에 또 오래간만에 실력 한번 보여줘? 으스대며 앞치마를 두른다.
메뉴는 가장 빠르게 하면서 와인 안주도 되고, 아들 성장에도 좋은 찹스테이크다.
좋은 고기와 파인애플만 있으면 끝! 각종 야채는 옵션이지만 파인애플은 꼭 들어가야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찹스테이크는 소스가 중요하다. 소스에서 신의 한 수는 씨겨자다. 홀그레인 머스터드 중에서도 내가 사용하는 건 코'즐릭스 머스터드 트리플 크런치'이다. 이건 그냥 소고기 구워 같이 먹어도 끝내준다.
찹스테이크는 와인도 맥주도 위스키도 심지어 막걸리도 모두 받아준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요리이면서도 내가 잘하는 음식이다. 마음 같아선 뵈프 부르기뇽을 하고 싶어도 귀찮으니까 참자 하면서 대체하는 요리도 찹스테이크다. 물론 40% 정도밖에 대체가 안되지만.
이렇게 한 상 차려놓고 먹다 보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식사시간이 길어진다. 자주 휘리릭 먹고 일어서는 식구들을 붙잡아두고 싶을 땐 이렇게 귀차니즘과 싸워 이기곤 한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면서 길게 길게 식사를 하면 우리는 부쩍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
이젠 정말 어쩌다 차리는 테이블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쌀도 못 씻던 시절이 웬 말이니.
한식 양념은 다 거기서 거기라 더 쉬울 수도 있지만, 사실은 양식이 더 쉽다.
양식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만 있음 다 된다~
"진짜야?"라고 묻는다면 "아마도?"라고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