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없는 여자라서
long long time ago~
바야흐로 아주 오래전에
중학교 2학년의 나는 사춘기를 씨게 만났지.
문학소녀에서 불량소녀가 되어갈 때쯤 국어 스앵님께서 조용히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어.
그리고는 <데미안>을 건네주시며 꼭 읽어보라고 하셨어.
읽었지 물론. 방황은 했어도 책은 싫지 않았으니까.
읽었는데 결론은? 그래서 어쩌라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을 하는데 그럼 나는 이 알을 어떻게 깨야하나를 깊이 생각하라고? 싫은데?
아주 반항심이 덕지덕지 온몸에 붙어 있던 때였어.
그리고 딱 두 달을 더 방황했나 봐. 사실은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재미가 없어졌어.
내가 했던 방황이라 함은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공부를 안 하고 그저 놀러 다녔던 게 전부였어.
가끔 혼자 살던 친구 자취방에 모여 술을 마셨지. 오 마이 갓! 중2가 술 이래, 그것도 롱롱 타임 어고에~
그게 전부였어. 그래도 그나마 순진했던 때였어.담배를 피우지도 않았고,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외박을 하지도 않았어. (그때는 술맛도 모를 텐데 뭐가 좋아 마셨을까? 술은 어디서 구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
매일 야자시간을 땡땡이치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한 다리 건너 건너 퇴학당한 아이들까지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 거야.
공부는 하기 싫고 방황도 하기 싫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건 미술이었어.
사실은 미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림에 미치도록 빠져본 적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오로지 화구통과 화구 박스 때문이었지.
가끔 화구 박스와 화통을 둘러맨 학생들을 보면 왜 그렇게 있어 보이는지. 간지가 아주 좌르르르.
그게 너무 멋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어.
나의 엄마 아빠는 내가 무얼 하겠다 하니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당장에 시작하라고 적극 지원을 해주셨어.
그렇게 중2- 2학기 때부터 고3 때까지 나는 수업이 끝나면 야자를 안 하고 화실로 갔지.
재미있었어. 배울수록 더 재미있었고, 잘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
사실 석고상들을 데생할 때부터 난 미술에 그다지 소질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쥴리앙의 빠마머리를 데생할 때는 항상 뭐가 부족해 보였거든. 더 이상 실력이 늘지도 않는 것 같았지.
그런데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그저 더 많이 그려보면서 실력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라떼는 말이야 (정말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란 걸 이해해주길 바라.)
전기대, 후기대, 전문대 이렇게 세 군데 입시를 볼 수 있는 학력고사 제도였어. 아 옛날이여~
아마도 내가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 것 같더라? 어쨌든.
지금도 알아주지만 미대의 최고봉 홍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실력이었고, 학교에서 원서를 써 준건 중앙대 (전기대). 한남대 (후기대), 한양 여전(전문대) 이렇게 세 곳이었어.
나는 전기대에 떨어지면서 세 군데를 다 가서 실기시험을 치르게 된 꼴이야.
중앙대도 사실 꿈도 안 꿨어. 난 한남대에 가고 싶었거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전이라는 도시가 괜히 궁금하고 미지에 대한 세계라고나 할까?
입시가 다가올 때쯤 화실에서는 실기시험장에 대한 정보와 요령들을 알려줘.
그때 원장님이 그랬어. " 실기시험장에 들어가서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하는데 만약 정말 말도 안 되는 자리를 뽑게 되면 재수할 준비를 해라. 그래도 최선을 다해 감독관 눈치를 살펴가며 이젤을 조금조금씩 옮겨서 그나마 그릴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그려라."
원장님이 얘기한 재수할 준비를 해야 하는 자리라 함은 석고상의 뒤통수가 더 많이 보이는 후측면이었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웬만큼 재수 없지 않으면 그런 자리는 안 걸릴 거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둔 학교가 많이 없다. 였지.
그래서 후측면은 거의 그려보지도 않았지. 내 기억엔 그래도 모를 그 재수 없음에 대비해 딱 한번 그려본 것 같아.
한남대 실기시험을 보러 엄마랑 고속버스를 탔지.
처음 가보는 대전이라 더 설레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더 긴장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아~~ 지금도 생각나. 난 그때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윤상의 <이별의 그늘>에 심취해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뭐가 쿵 소리가 나는 거야.
우리 좌석 위 짐칸에 올려두었던 내 화구 박스가 커브길에서 아래로 떨어진 거야.
아놔, 이건 뭐지? 왜 화구 박스가 떨어지냐고 불길하게....
애써 찝찝한 마음을 추스르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제비를 뽑았는데...
진짜 욕이 절로 나오더라.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래, 그거야. 화실 원장님이 말했던 그 재수할 준비를 하라는 재수 없는 그 자리 말이야.
석고상은 아그리파였어. 혹시 알고 있니? 아그리파 뒤통수는 진짜 밍밍하다는 걸. 쥴리앙의 빠마머리 정도는 됐어야지!!!
뭘 그릴 게 없지 그놈의 뒤통수는 ㅡㅡ
원장님의 조언대로 이젤을 야곰야곰 옮겨봐도 보이는 건 아그리파의 오른쪽 그 넙데데한 볼때기밖에는 ㅜㅜ
정말 아그리파의 싸다구를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었어.
난 조용히 형태만 끄적거리다가 시험장을 나와버렸어.
이미 데생에서 떨어졌는데 2차로 전공은 시험을 볼 생각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엄마에 대한 예의로 2차 실기도 치르고 나왔어.
뭐 이런 종간나 새끼 같은 경우가 다 있었을까?
나는 이 모든 게 다 버스 안에서 떨어진 내 화구 박스 때문이라며, 내 잘못은 없다고 위안을 삼았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해서 미치겠는 거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자꾸만 나는데.. 전기대 불합격 발표를 들었을 때보다 더더 많이 울었어.
아마 지지리도 없는 내 운 탓을 해서 더 억울했겠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전문대도 시험을 봤어.
결국 난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어.
엄마는 재수를 하라고 했지만 나는 미술에 '미'자도 보기 싫었어.
그 후론 미술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내 실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 가끔이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그랬어.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날 화구 박스가 떨어진 것도 아마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어찌어찌 미대를 들어갔어도 손가락 빨며 살았을 실력이었거나, 아예 졸업을 못했을 수도 있거나.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이라서 애초에 내 삶의 방향키를 돌리신 신의 뜻이 아닐까도 싶고.
그래도 가끔은 생각해.
내가 미대에 들어갔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