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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어달리 해수욕장에서

그 바다, 그 파도소리

by 그레이스웬디

갑자기 조덕배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꿈에, 나의 옛날이야기,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이 노래들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향하는 그 옛날 어달리 해수욕장. 강원도 동해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이 짧아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바다가 있는 곳. 작지만 그래서 붐비지 않아 한적한 곳, 붐비지 않아 시즌에도 물이 너무 깨끗하던 곳.

그곳에서 내 나이 25살에 해수욕장 여름장사로 포장마차를 했었다. 시내에 오피스텔을 하나 잡아 숙소로 쓰면서..

해수욕장에서 장사를 하려면 허가가 있어야 한다. 해수욕장 위원회? 이런 곳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랬던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인맥으로 어렵지 않게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뻤고 주변엔 항상 힘 있는 오빠들이 있었다. 유치하지만 결코 유치하지만은 않았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나를 좋아했었다. 성격이 무엇보다 나의 큰 장점이었다.

화통하고 배려심 있고 매너 있으며 야비하지 않았고, 간사하지 않았고 정직했으며 활발하고 명랑해서 주변을 밝게 했고, 이쁜 척하지 않았고 내숭 떨지 않아서 모두가 나를 좋아했었다.

나의 청춘은 그렇게 우리들만의 리그 속에서 언제나 탑을 차지했었다.

외로울 틈이 없었고 지루할 틈이 없었고, 그래서 혼자 있을 틈이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은 나를 찾았다.

나는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연예인들의 우울을 이해할 수 있다.

늘 사람들과 지내다가 집에 들어와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고, 부쩍 더 외로워지기도 했었다.





그 여름 해수욕장에서 포차를 했던 그때 어느 때보다 바빴고 어느 때보다 고되었고, 어느 때보다 즐거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어슴푸레 해가 질 때쯤부터 가게 문을 열고 날이 밝아오는 새벽까지 하루도 안 빼고 한 달 넘게 그런 생활을 했었다.

손님이 한창 붐비는 시간이 지나고 새벽 2시가 조금 넘는 시간부터는 모래사장에 설치한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나도 술 한잔 마실 여유가 생긴다.

아직 가지 않은 손님들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해내는 청춘들에 섞여 나도 같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참 많은 쪽지로 고백을 받았고, 전화번호를 달라는 메모를 무수히 받던 시절.

생각만 해도 그 풋풋하면서도 예뻤던 나의 청춘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 있었다.

새벽 4시에서 5시쯤 해가 서서히 올라오기 전의 그 파도와 그 하늘. 그 공기, 그 바람. 그때 조덕배의 노래를 항상 틀었었다. 때론 술에 취한 채로, 때로는 너무도 말짱한 정신으로 파도소리와 섞인 조덕배의 노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장사를 하는 시간 내내 신나는 여름 댄스음악을 틀어놓다가 영업이 끝날 즈음부터는 조덕배 노래로 돌려놓았었다. 나는 왜 그렇게도 그 파라솔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덕배에 빠졌을까

비가 오는 날이면 아주 만신창이가 되는 날이다.

비를 맞으며 술을 먹기도 하고, 손님들이 주는 한 잔 두 잔에서 에라 모르겠다 같이 마시자하며 퍼질러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런 내가 좋다고 휴가 온 내내 나의 포차를 방문한 사람들도 많았다. 비가 오면 조덕배는 더 열창을 한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나를 울리곤 했다.


뭐가 그렇게 좋으면서도 슬펐을까

내 청춘이 슬펐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적도 없었고, 돈 걱정에 고된 노동을 한 적도 없었던 내 청춘이 나는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실연의 아픔조차 겪어보지 않았던 나는 뭐가 그렇게도 우울했을까

나의 밝음 속에는 나만 아는 우울이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부러움을 샀던 나는 분명 우울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내 성격이, 내 감성이 풍부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내 청춘이 슬프고 우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한 짓 때문이라는 걸..

내가 유난히 그 어달리 해수욕장에서의 포차를 떠올리는 것은 나의 못된 짓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다가 그 새벽 파도소리와 조덕배의 목소리가 자꾸만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넌 지금 이렇게 즐거우면 안 돼' '이 나쁜 ㄴ아'

괴로우면 괴로움을 떨치려고 술을 더 퍼마셨다. 차라리 술에 떡이 되면 아무 생각 없이 잠이 들 수 있으니까. 나의 죄책감을 자꾸만 인지하는 내가 싫어서 모른 척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날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나이가 들수록 더...

20년도 넘은 그 이야기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과연 미안하다는 이 가벼운 말로 용서가 될까?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그래 내가 이제 벌을 받는구나' 싶기도 했다.

나의 거짓에 나의 오만에, 상처받았던 그 사람에게 꼭 한 번은 만나 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용서를 빌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용서를 빌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냥 꼭 한 번은 만나고 싶다.

나는 그를 기만했다. 그것도 작정하고... 기만했다. 그만 기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를 기만했다.

변명이라도 하라고 한다면 그때 나는 철없는 25살이었다고... 하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뭐 그깟 일 가지고 그래 '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와 그 사람에게는 그깟 일이 아니었으니까.

받아들여지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분명 무거웠다.




그 옛날 어달리 해수욕장에서의 즐거움과 행복이 나의 죄책감과 미안함과 공존한다.

하지만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였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시간을 돌린다면 나는 그때의 그 어달리 해수욕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늦기 전에 그 사람을 만날 것이다.

오늘도 조덕배의 노래는 그 바다를 회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내 25살의 어여쁜 청춘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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