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만 피하고 싶은 것
미대 입시 준비를 하던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도예가를 꿈꾼 적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미술학원에서 조소과를 다니는 대학생 선배들이 흙을 다루는 손놀림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흙을 떼내어 손으로 대충 막 붙여놓고 틀을 잡는데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흙의 감촉도 좋았고.
그리고는 당연히 잊혔다. 그릇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릇을 만질 때마다, 그릇들의 디자인을 볼 때마다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했다.
그래서 체험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도예공방을 찾아다닐 생각도 없었고, 그냥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 볼 의향은 있다? 이 정도라고나 할까.
그에 반해 목공은 도예보다는 조금 더 갈망한다. 나는 가구도 철제보다 나무가 좋다. 왜 목공을 배우고 싶은가 생각해보니 가구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목공을 배워 가장 먼저 만들고 싶은 건 그릇장이다. 내가 나무에 익숙한 건 아빠 때문인 것 같다. 국민학교 다닐 때 나의 첫 침대를 나무로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항상 나무로 거북선을 만드셨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 같은 것도 없어서 어디서 배울 데도 없었음에도 독학으로 거북선을 그렇게 만드셨다.
완성된 거북선들이 하나 둘 유리 상자 안에 들어가 장식이 되었다.
나는 곧잘 아빠가 거북선을 만들 때 옆에 앉아 아빠의 손기술들을 보곤 했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잘 만드는지 정말 손재주가 좋았다.
아빠는 거북선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처럼 만드셨다. 취미였을 뿐인데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드셨다.
나무를 대패로 종이처럼 얇게 슬라이스 해서 돛을 만드셨다. 거북선 머리인 용의 입안에는 여의주를 넣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인두로 용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렸다. 눈도 콧구멍도.
거북선 갑판 위의 거북등에는 뽀족뽀족하게 나무를 삼각형으로 깍아, 하나하나 일일이 몇 십개에서 몇백 개까지 만들어 꽂아넣으셨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업은 거의 완성된 거북선에 깃발을 만를때였다.
그 작은 깃발을 어찌나 반질반질하게 사포질을 해서 부드럽게 만들었는지, 그걸 만지는 게 너무 좋았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든 깃발에는 항상 인두? 같은 걸로 한자를 새겨넣으셨다.
글자를 새길 때 그 나무 타는 냄새도 나는 좋았다. 어떤 한자였는지 어린 나는 알지못했다.
엄마는 그 거북선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일도 안 하고 거북선만 만들고 앉아있었던 것도 아닌데 엄마는 아빠는 거북선과 결혼한 것 같다고 하셨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던 아빠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거북선 만드는 분이 출연했는데, 그때 나는 아빠가 생각났다. 그 분보다 아빠의 거북선이 훨씬 더 훌륭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었으면 아마 방송을 타던, 판매를 하던 대박이 났을 텐데..
그것도 아니면, 아빠가 만든 거북선을 하나라도 내가 가지고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빠가 거북선을 만들고 나무로 뭐든 만들곤 했던 모습 때문일까.
나도 목공을 배우고 싶다는 그 왠지모를 끌림이 있었다. 엄마는 나보고 아빠의 손재주를 닮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은 그놈의 돈도 안 되는 손재주 였다. 지금 아빠랑 사이가 좋았다면 나는 아빠를 앞세워 사업을 했을 것이다. 분명 돈이 되는 손재주였다.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니까.
푸드 카빙도 잘했는데... 아빠의 공구함에는 신기하게 생긴 조각칼들과 인두 펜 등등 깎거나 오리거나 그리거나 다듬는 것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목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마음속에 꾸역 구역 밀어 넣는 이유는 목공을 배우면 아빠가 자꾸만 생각이 날 것 같아서였다.
아빠는 내가 28살에 엄마랑 이혼을 하셨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서류에는 여전히 가족으로 남아있는 아빠라서, 죽으면 치우라고 연락 오겠지 하신다.
부모님의 인생과 내 인생은 분리되어야 한다. 내가 목공에 자꾸 끌리는 것이 아빠로부터였고, 목공을 시작하면 생각날까 두려워 피하고 있지만, 나는 끌림에 따라 목공을 하게 될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아빠보다 더 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