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세 남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 그 남자네 집 中에서-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오래된 소망이 있다.
궁극적인 목표가 아주 멋진 소설 한 권 쓰는 것인데, 그건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에 소설이라는 장르에 빠지면서 더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신경숙, 공지영, 박완서, 은희경 등 한국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었던 작가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들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지난한 아픔의 시대적 배경과 사랑이야기, 인생 이야기들이 있었다.
내가 살았으나 알지 못했던 일들도 있고, 역사책에서나 본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들은 또 나를 흥분시키곤 했다.
대부분 10년이 지난 그녀들의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지고 있고, 나 또한 17년 전에 읽었던 박 완서님의 <그 남자네 집>을 다시 읽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당연히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았고,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몰입했다.
17년 전에도 나는 분명 그렇게 몰입하며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책을 읽고도 느끼는 부분의 오차가 제법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 완서님의 그 남자처럼 나에게도 있는 그 남자 이야기.
박 완서 님에게는 오직 그 남자만 있었지만, 나에게는 두 남자가 있다. 어쩌면 세 남자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겠고.
여기까지 쓰고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두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 할까, 시대순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의 무게 순으로 써야 할까...
그냥 묻어버리면 그만인 일인데 왜 굳이 꺼내려고 할까, 왜 그렇게 두 남자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걸까.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 더할수록 점점 나는 쓰고 싶어 진다. 점점 써야겠다고 마음먹어진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생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왜 뺄 수 없냐고 묻는다면 그들을 빼면 나는 구멍이 뻥하고 뚫린 청춘을 보낸 것 같으니까.
내 젊은 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을 뺀다면 나의 20대가 통으로 날아갈 것 같으니까.
가장 꽃다웠으나 가장 지리멸렬했던 나의 20대에 두 남자는 나를 살게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아름답거나 못다 이룬 첫사랑 같은 그런 아련함만은 아닌 것 같다.
그땐 그랬지, 하고 끝내버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쓰고 싶은가 보다.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오랜 영화가 있다. 2014년 개봉작으로 주연배우는 황정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책으로 먼저 읽었었다. 1,2권으로 되어있었던 책인데 작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을 읽고, 다음에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두 남자를 다시 떠올렸다.
잊고 살았고, 잊고 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았어도, 문득문득 자꾸만 떠오르는 두 남자가 때론 제발 좀 사라지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숙제처럼 두 남자 이야기를 써야만 할 것 같다.
용기도 필요하고,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고, 용서받고 싶어서 무릎을 꿇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박 완서님처럼 물같이 담담한 포옹을 하며 결별을 하고 싶다.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인연. 나도 족한 결별을 하고 싶어서 나는 두 남자 이야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