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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엔 차박이지

고마운 나의 시댁과 캠핑의 묘미

by 그레이스웬디

우리는 명절이라고 제사를 지내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명절은 프리 하게 각자 여행을 가거나 상황에 따라 시댁 식구들이 모이거나 그러는 편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너무나도 쿨한 신여성이라서 시댁에서 모인다 해도 며느리들에게 음식을 요리하게 하지 않으신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과하게 음식을 하시진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겠다고 하면 음식은 혼자 다 해두시고 언제 어느 때건 도착하면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 있다.

하루를 더 빨리 가도 더 늦게 가도 언제나.. 사전에 미리 통화만 되면 된다.

그것이 10년째이니 어머님의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우리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것들로 대신한다. 서로에게 좋은 것을 해주면 된다.

이번에 우리 세 식구는 선유도에서 차박을 하기로 했다.



명절 전에 어머님도 강원도에 가셨다. 시댁은 군산인데 어머니는 강원도에 자주 일을 봐주시러 가신다. 그 먼 거리를 직접 운전을 하셔서 왔다 갔다 하신다. 다행히 나의 시어머니는 내가 연하 남편을 만나는 덕에 젊으시다.


우리가 선유도에 차박을 하러 왔다고 하니 내일 서둘러 오신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굳이 그러시겠다고 하시면 그냥 그런 것이다. 명절이든 언제든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시어머니와 동서와 나는 술파티를 벌이고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놀고, 나의 피터팬은 형아들이 봐준다.

시댁에 오는 즐거움이 있다. 마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편하고 즐겁다.

그렇게 술집에서 우리는 시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들 욕을 해대곤 한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언제나 다 내 잘못이다, 내가 잘못 키웠어, 이해하며 살아라 하신다.

언젠가 한 번은 언제나 죄인 같은 어머니가 못마땅해서 어머니 그런 말씀 마시라고, 처음엔 어머님 탓을 한적도 있지만 살다 보니 어머니가 잘못 키우신 건 하나도 없더라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죄인처럼 그러지 마시라고..

우리는 그렇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보다는 친구이고 같은 여자이고,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 이런 시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에 한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추석 당일 선유도로 차박 캠핑을 왔다.

선유도에서도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곳이다. 우리까지 4-5 팀의 차량이 1박 캠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조용한, 이 고즈넉함이 참 좋았다.

파도소리, 그리고 온몸을 스치는 바닷바람이 쌀쌀한 것마저도 너무도 좋더라.

여름엔 더워서 못했던 불멍도 때릴 수 있었다.

이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내 삶이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함을 느꼈다. 명절에 차박을 떠날 수 있는 내 현실이 참으로 고맙다면서..

예전에는 호텔이 아니면 떠나질 않았는데 다소 불편함이 있는 캠핑이 이렇게 좋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캠린이지만, 여전히 호텔만 찾아다녔다면 얼마나 이 시간들이 아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캠핑 용품은 대충 있는 것으로 짐을 부렸는데, 점점 욕심이 나는 것이 하나 둘 장만할 생각이다. 남편도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 번 두 번 하면 할수록 뭐가 있으면 편하겠다, 아~~ 이럴 때 그게 있어야겠구나 하면서 "불편해서 이번이 마지막이야" 대신 조금 더 편한 캠핑을 위한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이 텐트에서 자는 것도 차에서 자는 것도, 모기에 물려가며 밤에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도 ,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이 나였다. 캠핑용품을 사느니 그릇을 사고야 말지 하던 나였다. 당연했다. ㅎㅎ

씻는 것도 불편하고, 짐을 펼쳤다가 다시 싸는 것도 성가시고 힘들고. 그런 캠핑이 뭐가 그렇게 좋은가 궁금하지도 않았던 나라고 하기엔 그 맛을 단박에 알아버렸다.

캠핑을 하면 좋은 점은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오롯이 자연을 온몸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풀벌레 소리, 자연의 냄새, 바람.. 내가 자연으로 돌아간 느낌마저 드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번엔 아주 둥그런 보름달을 볼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들과 함께 소원을 비는 낭만이란..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도 캠핑을 하면서 들으면 전혀 다른 노래가 되고, 자주 먹어 아쉬울 것도 없는 고기도 새로운 음식이 되는 마법.

풍경이나 환경 때문인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로운 것 같다.

그 마음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모기가 물어도 하나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아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캠핑이었지만, 내게 더 큰 추억이 되었다.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캠핑장비에 진심이 되어버렸고, 나는 즐거운 쇼핑을 할 일만 남았다. 유후~

집에 와서 정리하는 일이 가장 힘들지만 다음을 위해 더 꼼꼼하고 살뜰하게 짐을 다시 싸놓는 나를 발견하면서 이제 더 이상 리조트나 호텔에 목매달 일이 없을 것 같다며 피식 웃어본다.


캠핑은 울 것도, 물 것도 없이 그저 즐거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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