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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Mar 22. 2024

꽃샘추위는 겨울의 오만함

감정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
아무리 공정하게 생각한다 해도 결국 그것 역시 주관적인 견해였다.
-영화 <오만과 편견> 중에서





너무도 유명한 고전소설, 제인 오스틴을 있게 한 <오만과 편견>을 벌써 네 번째 읽었다.

가끔씩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나는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보다 이 <오만과 편견>을 먼저 들추곤 하는데 오만과 편견이라는 감정은 꼭 사랑에만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은 꼭 남과 여의 사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감정이라고 볼 때, 어떤 성격의 사랑에도 오만과 편견은 늘 존재하므로 이 책에서 얻는 인사이트는 결과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포함한 모든 관계에서의 사랑에 대응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이라는 것은 능동적이다. 사랑은 이루는 능력이지 이루어지는 상태가 아니며, 사랑받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능력이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것이  철저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라고 할 때 오만과 편견이라는 감정은 자발적 사랑을 하는 데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사랑이든.


이 작품은 남녀의 사랑을 시작하는 데에서 상대방을 편견이라는 눈으로 먼저 스캔을 하고, 그런 모습을 오만함으로 생각하는 주인공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주제를 가졌다.

무도회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빙리에게 "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네. 하지만 내 마음에 들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아."라고 말했고 엘리자베스는 그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다.


무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네 자매는 오늘의 무도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단연 이야기의 화제는 다아시이다.

"그 정도면 오만할 만도 하지 않겠어, 집안 좋겠다, 재산 많겠다, 원하는 건 전부 갖췄겠다, 그렇게 대단한 젊은이가 자기를 대단하게 여긴 들 이상할 것도 없잖아.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 정도면 얼마든지 오만할 자격이 있다고 봐."


18세기의 영국풍습을 보면 딸들에게는 유산상속이 되지 않아 부모들은 모두 딸들을 부잣집에 시집을 보내고 싶어 했고, 여자들은 당연히 좋은 집안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자 인생최대의 목표였다.

물론 그런 풍습은 18세기나 21세기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상대자를 고르는 조건은 돈이 많아야 하고, 직업이 좋아야 하고, 학벌이 좋아야 하고 거기다가 잘생기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신랑감이다. 때론 신부감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여자들의 로망인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 혹은 여자는 스스로를 잘났다 생각하며 상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판단하는 오만함을 가져도 되는가?

"오만함은 인간에게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결함이라고 생각해. 인간이란 지극히 오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든 착각으로든 자기가 지닌 이런저런 장점에 대해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야." 엘리자베스의 동생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즉,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만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다만 허영과 오만은 다르다는 것, 허영이 없어도 오만은 있을 수 있다는 것, 오만은 자기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와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와 관련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두고 " 뭐 나쁘진 않지만 내 눈에는 부족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함이 맞지만 그럴만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다아시만큼 부자라면 내가 얼마나 오만하든 신경 쓰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오만함은 시대를 따지지 않는 인간 본성이기에 이 오래된 작품이 한 달 전에 출간된 신간이라고 해도 이상할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오만함을 당연시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오만과 편견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결국 사랑하게 되는 여정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를 잘 보여준다.

어렵게 돌아돌아가는 길, 그길엔 오만과 편견이 있었다.


마침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사랑하게 된다.

편견을 가지고 다아시가 오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녀가 어떻게 다아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기를 사랑해 준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면서 지독하게 무례하게 굴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해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자기 마음에 들 정도는 아니라고 오만했던 다아시는 어떻게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자신의 집안보다 못한 집안의 딸이라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편견은 엘리자베스의 지적능력과 소통능력은 다아시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사회적 계급과 성격의 오해로부터 오는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린 이 소설에서 우린 오만과 편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상호 이해와 관용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타인을 평가했는가?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오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를 생각해 본다.

그런 감정들은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줄 수도 있고, 나의 작은 편견과 티끌 같은 오만함일지라도 상대에게는 인생 최고의 수치심과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오만을 몸에 지니고 있다.

'넌 못하지만 난 할 수 있어, 넌 이런 것도 못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는군, 넌 당연히 감사해야 돼' 혼자 하는 생각이지만 이런 나의 속마음은 이미 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저 사람은 경험이 없으니 절대 못 할 거야, 저 사람은 맨날 저렇게 허허대는데 속은 있나?, 저 사람은 나보다 돈이 없으니 분명 이 느낌을 모를 거야, ' 이런 편견으로 내 마음대로 한 사람을 평가절하한 적은 없는가?

요즘 나는 이 오만과 편견에 대해 자주 깜짝 놀라곤 한다.

독서모임을 할 때이다.

내가 분명 저 사람보다 더 많은 책을 알고 있다는 오만함에 마음껏 떠들어대면 묵묵히 듣고 있던 그 누군가가 조심스레 꺼내는 자기 의견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고는 티도 못 내고 혼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너무 찌질하지 않은가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느꼈을 그 감정상태가 아주 적나라하게 이해가 된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띵함과 함께 나 자신을 바로 돌아보며 다짐한다.

운전 잘하는 것에 오만함을 가지지 말아야 하듯 책을 읽을 때에도,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내 생각이 대체로 맞을 거라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넌 이만큼 이해 못 할 거야 하는 편견을 절대 버리기로 말이다.

편견을 깨고 오만함을 버리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바람이 매섭게 분다.

3월이 거의 지나가고 있는데 꽃샘추위라고 하기엔 부는 바람이 칼처럼 매섭다.

꽃이 활짝 피는 것을 시샘하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그 바람에 꽃은 더 쨍하게 필 것인데), 봄의 따사로움을 질투하며 넌 나를 피해 갈 수 없어하는 겨울의 마지막 오만함이 꽃샘추위가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그 오만함은 더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꺾일 것임을 겨울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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