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휘 Nov 18. 2024

30년째 좋아하는 향기

샤넬 NO.5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해 준 건 가방도 옷도 아닌 향수였다.

물론 내 나이 스무 살에 명품 가방에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그때도 분명 샤넬은 명품백으로 유명세를 달렸겠지만 나에게 첫 샤넬은 단연 향수였다. 샤넬 no.5!

향이고 뭐고 첫눈에 반한 건 일단 네임이었다.

아니 무슨 향수 이름이 이렇게 시크해? 넘버 파이브라니~

두 번째 나를 반하게 한건 투명한 사각 케이스였다. 이후 잠시 한정판으로 블랙에디션이 출시되었을 때 당연히 나는 그 제품을 구매했고, 2018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샤넬 NO.5의 디자인은 투명한 사각이었다.

깔끔함 그 자체에 샤넬의 모토가 그대로 들어있다.

대개 향수병은 화려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인 반면 샤넬 N0,5만큼은 병 디자인을 모던하게 유지했다.

그만큼 향에 자신이 있다는 거지. 코코 샤넬의 자신감과 프라이드는 시향을 하기도 전에 이미 케이스에서 끝났다!


내가 처음 N0,5를 만난 건 제대로 된 멋이 뭔지도 모를 나이 21살에, 멋 좀 내는 남자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향이 좋아서라기보다 소위말하는 있어빌리티를 추구한답시고 선물한 모양인데 나는 그야말로 그 향에 푹 빠져버렸다.

아니 도대체 이 향은 뭐지? 향수라고 하면 흔히 꽃향기가 대부분인데 이건 꽃향기도 아니고, 비누향도 아니고 도대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고농축적이고 중후하며 강렬한 느낌.

첫 향에 반해버린 나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30년 간 샤넬 NO.5를 애정한다.


30년 전에는 향수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가장 흔하게 하는 선물이 향수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꽤 비싼 아니 매우 비싼  향수로, 향수계에선 에르메스보다 더 고급진 것이 샤넬 N0.5가 아닐까...(물론 에르메스 향수도 갖고 있다, 디올 향수도 있다) NO,5로 향수에 눈을 뜬 후로 한동안 향수만 셀렉한 적도 있었으니 나름 향에 민감하고 까다롭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고 또 사는 건 샤넬 No.5 뿐이다.


이 향에 반해서 샤넬 향수에 대해 아는 체 좀 하고 싶어 자료를 뒤적였던 적이 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나같은 작은 나라 소도시에 사는 사람도 이 향을 쓸 수 있게 이토록 널리 전 세계에 하사하신 매우 땡큐베리머치한 브랜드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나름 두뇌에 가둬놓은 정보라면, 세계 최초의 모던 향수라는 점. 유명한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 샤넬 창립자인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협력작품이라는 것 정도겠다.


샤넬 No.5의 향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느니 그냥 칙 하고 뿌려주면 아무 말도 필요 없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향을 글로 남기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향을 설명하려 애를 써보겠다.

일단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고급지다'이다.

이 고급짐을 어떻게 설명할까 ㅎㅎㅎ

나는 향수의 매력은 베이스 노트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샤넬 No.5의 베이스 노트는 쉽게 휘발되지 않을 진함을 가지고 있고, 나의 체온과 화학적인 반응이 이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하게 내  피부에 남는다.

우디향과 달콤한 바닐라, 엠버 향의 따뜻함과 머스크의 관능적이며 파촐리의 흙내음이 모두 어우러진 향.

이해되는가? 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잔향은 오래 남아 그 사람 마저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향이다.

그러니 나를 각인하고 싶은 자리엔 반드시 샤넬 N0.5를 뿌리고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샤넬 n0.5를 사랑하게 되면 가벼운 향은 기피하게 되는, 과학적인 알데하이드 향 중독성은 감안하시길.

무엇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랑일랑과 베르가못, 아이리스가 블랜딩 되었다는 점이 나를 NO,5로부터 못 헤어나게 만든다.


이쯤에서 유명한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1952년 라이프(LIFE) 잡지에서 마릴린 먼로와 인터뷰를 했다.

"밤에 무엇을 입고 자나요?"

"나는 샤넬 N0.5 몇 방울만 뿌린답니다"

옷을 입지 않고 향수만 뿌린다는 건지 확실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이 인터뷰를 들으면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기의 여배우가 샤넬 NO.5만 뿌린다니... 남자들 숨이 꼴딱 넘어갈 판이다.

그녀의 이미지는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이며 고급스럽고 매력이 넘치는 여배우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그녀의 매력에 빠진다. 여성들은 마릴린 먼로가 뿌리고 자는 향수니까 당연히 샤넬 N0.5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는 마릴린 먼로는 사진으로만 알 뿐이지만, 마릴린 먼로라는 장치가 없었어도 샤넬 NO.5는 이미 유명해질 아이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향은 여름보단 가을 겨울에 어울린다.(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상큼하기보다는 묵직하기 때문에 향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 코트에 뿌린다면 이보다 더 멋진 여자가 될 수 없으리라.


다섯 번째의 향이라서 NO.5.

이 단순한 네이밍도 왠지 샤넬이니 어울려 보인다.

코코 샤넬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숫자 5. 이 숫자는 결국 그녀에게 역사에 남을 향수를 가져다주었다.

찰스 디킨스가 금요일을 특별한 요일로 생각하며 평생을 산 것처럼, 코코 샤넬이 5를 특별한 숫자로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은 나만 특별히 생각하는 그 무언가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나에게 깊은 향과 깊은 추억을 남겨준 샤넬 NO.5.

향수병을 만지작거리며 오랜만에 이 향을 알게 해 준 그 남자 생각도 잠시 해본다.

젊은 날엔 모든 것이 가득했다. 그리고 모든 나를 사랑했다.

나의 젊은 날에 언제나 가득 퍼졌던 NO.5 향처럼...

나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코코 샤넬의 말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